[여적]홍범도 ‘80주기 추도’의 쓸쓸함
2021년 8월1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묘역에 잠들어 있던 홍범도 장군(1868∼1943) 유해가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국내에 봉환됐다. 사흘 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치러진 안장식에서 국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라고 쓰인 빨간 천이 덮인 관을 향해 경례했다. 건국훈장을 수여한 박정희 정부, 홍범도함을 진수한 박근혜 정부, 78년 만에 장군을 봉환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독립영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변한 게 없다.
홍 장군을 두고 2년 뒤 벌어질 일을 누가 감히 상상했을까.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영웅이 소련공산당 가입 전력자로 폄훼될지, 때아니게 육군사관생도의 대적관을 흐리게 만드는 인물로 공격받을지를 말이다.
2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은 무겁고 우울했다. 우원식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추모사에서 “홍 장군이 흉상 철거 논란 때문에 고국 땅에서 여전히 편히 잠들지 못하고 계신다”고 했다. 이종찬 광복회장도 대독한 추모사에서 “유해를 국내로 모시고 와놓고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독립영웅인 홍 장군의 공적과 역사적 위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최고로 예우하겠다”고 했다. 박 장관의 말에 박수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일부 참석자들은 ‘홍 장군을 더 이상 욕보이지 마라’라고 적힌 손팻말로 항의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화환을 뒤로 돌려놓기도 했다.
느닷없는 ‘이념 전쟁’으로 독립운동 역사 지우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최고의 예우’를 말하는 보훈 수장에게 진심이 느껴질 수 있을까. 서울 서대문구청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 홍 장군 추모 부스를 설치하려 하자 불허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 장군 추모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불허 이유를 댔는데, 궤변이다. 서대문구청장은 국민의힘 소속 이성헌이다.
국민들은 홍 장군의 헌신을 기억한다. 자긍심도 느낀다. 일부를 트집잡아 특정 시각에서 평가하는 윤석열 정부식 역사 해석은 위험하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독립영웅을 기억하는 나라가 아니라 욕보이는 나라가 된 것인가. 홍 장군을 기억하는 날이 쓸쓸하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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