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국 바이오 위상 달라졌다...세계 최대 의약품전시회장 입구부터 큼지막한 ‘삼성’ 로고
24~26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CPHI 개막
수십곳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대거 참가
“Samsung, Your trusted CDMO partners(삼성은 신뢰할 수 있는 CDMO 파트너).”
24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전시 시설인 ‘피라 바르셀로나 그란 비아’ 입구. 파란색 셔츠를 입고 있는 한 남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천장에 설치한 대형 간판 문구를 올려보면서 소리내어 읽고 있었다. 남성은 한국말이 서툴러 보였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삼성’이란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박람회가 시작되는 입구부터 K바이오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날 개막한 ‘의약품전시회(CPHI) 월드와이드 2023′ 행사장은 전 세계에서 온 제약 바이오 기업 2500개와 참가자 약 5만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크게 북적였다. 올해 CPHI 행사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경영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행사 관람객들은 종이가 아닌 모바일 입장권인 큐알코드(QR)를 제시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고 각종 홍보용 출력물들도 예년보다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행사 관계자들도 “종이는 없다(No paper)”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사실상 전 세계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번 행사에는 한국에서도 전통 제약사들과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을 하는 바이오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올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행사의 메인 파트너로 참여해 인파가 붐비는 위치에 부스를 설치한데 이어 대웅제약, SK팜테코, 롯데바이오로직스, 에스티팜, 유유제약,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같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참여해 기술과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삼성바이오·SK팜테코 등 부스 참여, “글로벌 수주 나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2020년 행사가 비대면으로 열렸을 때를 제외하면 지난 2018년부터 매년 단독 부스를 마련하고 있다. 올해도 전시장 메인 위치에 해당하는 H3홀에 중심부에 225㎡규모의 대규모 부스를 설치했다. 부스 벽에는 눈에 잘 띄는 월 그래픽(Wall Graphic)을 통해 회사가 보유한 60만4000L의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능력과 새로운 기술 홍보하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존 림 대표와 제임스 최 부사장이 출동해 글로벌제약사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이어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이미 회사가 글로벌 CDMO 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새로운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탄소배출량 억제와 기후변화 대응에 민감한 유럽의 시장 환경을 감안해 재활용 자재 등 친환경 소재로 부스를 만드는 등 이미지에 신경을 상당한 신경을 썼다. 최 부사장은 “유럽계 글로벌 제약사들은 기후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회사의 탄소제로 경영 노력이 CDMO 기업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친환경 경영에 맞춰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사장은 2025년 가동이 본격화되는 5공장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최 부사장은 “글로벌 대형제약사들은 벌써부터 5공장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당장 생산이 가능한지 가늠하기 위해선지 캐파(생산능력)에 대해 가장 많이 문의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사장은 “현재 예정된 미팅만 50여건이 넘고 박람회 기간 내 추가 미팅이 이어질 예정이어서 소기의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의 CDMO 자회사인 SK팜테코도 이번 행사에 역대 최대 규모인 189㎡(약 57평) 크기의 단독 부스를 마련하고 글로벌 수주에 나섰다. 올해 행사에는 합성의약품과 바이오 의약품이라는 양대 포트폴리오를 갖춘 종합 CDMO의 면모를 보여주고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목표다.
포트폴리오 확대에 따라 전시 위치도 기존 원료의약품(API) 부스 자리에서 글로벌 주요 CDMO들이 위치한 위탁생산과 서비스 자리로 옮겼다.
이번 행사에는 요그 알그림 SK팜테코 사장을 비롯해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이포스케시, 또 SK팜테코가 지난달 경영권을 확보한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 CDMO인 CBM, 앰팩 같은 자회사 주요 경영진도 대거 참석했다.
SK팜테코의 합성원료의약품 연속공정 기술은 올해 ‘CPHI 파마 어워드(CPHI Pharma Awards)’의 혁신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최종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그 알그림 사장은 이날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이는 SK팜테코가 그간 기술에 대한 투자해 온 것에 대한 인정이라 생각한다. 수상에 오른 연속공정 기술은 고객들이 공정 개발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술력이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원료의약품 CDMO 계열사 에스티팜도 새 고객사 모시기에 나섰다. 신규 CDMO 사업 수주와 사업 다각화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에스티팜은 김경진 대표를 중심으로 올리고와 합성신약, 메신저리보핵산(mRNA)의 CDMO 사업 담당자들과 연구소 핵심 인력이 참여했다.
에스티팜 관계자는 “현재 여러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주력 사업인 올리고 사업분야의 제2생산동 증설에 대한 문의와 자체 플랫폼으로 구축된 mRNA 캡유사체와 나노지질 전달체 기술에 대한 미팅 요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티팜은 최근 올리고 제조시설인 경기도 반월캠퍼스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cGMP(우수의약품품질관리기준) 정기실사를 통과하고 시설 점검보고서(EIR)를 수령했다. 이번 FDA 실사 통과로 에스티팜은 글로벌 의약품 제조와 품질관리 기준을 충족하는 올리고를 생산·공급하는 제조시설로 인정받은 것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지난해에 이어 단독 부스로 참여했다. 김경은 롯데바이오로직스 사업개발부문장은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36만L 규모의 바이오 플랜트 건립을 공표한 뒤 잠재 고객사로부터 준공 일정 및 생산 역량 등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이번 행사의 ‘지속가능성’ 테마에 동참하고자 재사용 가능한 친환경 소재의 메탈 프레임과 라이트 패널과 디지털 사이니지를 활용해 부스를 제작했다.
셀트리온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참가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기술과 생산능력의 우수성을 알렸다. 단독으로 마련한 부스 내에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는 전용 미팅룸을 마련해 잠재적인 파트너업체 발굴에 나서고 있다. 셀트리온은 유럽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항체 바이오시밀러 제품 소개하고, 최적의 파트너 기업을 물색해 글로벌 공급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강자 맞서는 전통제약사와 바이오기업들
국내 전통제약사들도 이번 행사에서 부스를 차리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날 들른 한미약품 부스에서는 로수젯과 아모잘탄 등 자체 개발 제품과 비만 등 대사질환과 항암 분야에서 개발 중인 30여개의 신약후보 물질들이 소개됐다.
대웅제약도 올해도 단독 부스를 마련하고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와 SGLT-2 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를 중심으로 해외 파트너링 계약 체결에 집중할 계획이다. 자체 기술력과 글로벌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해외 파트너와 함께 글로벌 시장 확대와 신규 사업 기회를 발굴하겠다는 목표다.
제일약품은 품질 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을 앞세워 잠재 고객사에게 주요 의약품들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이밖에도 유유제약, JW중외제약, 종근당, GC녹십자, 유한양행, 대원제약, 일동제약도 행사에 참여해 자체 개발 의약품 위택생산(CMO) 사업 홍보에 나섰다.
바이오기업 중에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도 현장에 부스를 마련했다. 부스는 온통 민트색으로 물들어 있어 현장을 지나는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는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부산 명지지구에 전체면적 3만1000여㎡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의 혁신신약연구원을 짓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도 부산 혁신신약연구원의 역할, 췌장암 신약후보물질,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현황에 대해 홍보에 나섰다.
이외에도 현재 개발 중인 췌장암 후보 물질 ‘PBP1510′도 소개했다. 이 신약 후보물질은 ‘PAUF’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 항암제다. 박소연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그룹 회장은 “PAUF가 높을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PAUF가 낮으면 예후가 좋다”며 “PAUF 단백질을 억제하면 췌장암 치료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과 미국에서 현재 임상1·2a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별다른 증상이 없는 췌장암은 대부분 말기에 발견돼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암”이라면서 “조기 진단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PAUF를 기반으로 한 ‘진단키트’도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은 또 한번 달라진 K바이오의 위상을 실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진 에스티팜 대표는 “불과 10년전만 해도 한국의 제약바이오가 독자 부스를 차린 경우가 거의 없었고, 한국관에 아주 작은 규모로 기업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며 “이제는 한국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전면에 나서서 핵심 신약후보 물질을 소개하기도 하고, 역량을 갖춘 CDMO 기술을 갖고 글로벌 빅파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러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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