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엘시티 100층 계단에 숨이 '턱'…소방관은 "끝까지 간다"
전국 소방 공무원 895명 참여…낙오자 없이 전원 완주
방화복 1위 '21분 3초', 간소복 1위 '15분 39초'
"저길… 오른다고?"
25일 오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LCT). 우뚝 솟은 건물을 올려다 본 순간 혼잣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곳에서는 부산소방재난본부 주최로 제2회 전국 소방공무원 계단오르기 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소방공무원 895명이 엘시티 100층 계단 2372개를 오르는 대회다.
대회는 20kg에 달하는 화재 진압 장비를 메고 방화복을 입은 채 계단을 오르는 경쟁 부문과 간소한 옷차림으로 오르는 비경쟁 부문으로 나뉘었다. 이날 기자도 소방관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보기로 마음 먹었으나, 장비 착용은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에 비경쟁 부문으로 참가했다.
푹푹 찌는 방화복에 20kg 장비 메고도 '쌩쌩'
꼭대기 층이 보이지 않던 엘시티 건물로 들어서 계단을 호기롭게 뛰어 올랐다. 초반에는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작 20층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숨이 턱턱 막히고 얼굴에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리를 움직이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사이, 소방관들이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소방관들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화복에 무거운 장비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계단 2~3개를 한 번에 껑충 뛰어 오르며 힘차게 나아갔다. 지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채 계단을 오르는 소방관들을 보며 기자도 덩달아 열심히 발을 굴렸다.
70층에 다다르니 숨이 턱 끝까지 차고 심장이 미친듯이 날뛰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숨 넘어간다'는 표현이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힘차게 계단을 오르던 소방관들 얼굴에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계단에는 참가자들이 내뱉은 숨소리만 가득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괴로운 표정을 하면서도 단 한 명도 포기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 현장에서처럼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결승선이 보이자 소방관들은 남은 힘을 쥐어짜 내달렸다. 완주한 소방관들은 너도나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은 널브러져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특히 단체전에서 8분대로 들어오는 등 예상치 못한 좋은 기록을 확인한 대원들은 환호를 내지르기도 했다.
누군가를 꼭 구해야 한다는 마음은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회에서도 참여한 소방관 전원이 완주에 성공했다.
특히 충북 청주 동부소방서 윤바울 소방교는 방화복 부문에서 21분 3초를 기록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간소복 부문에서는 경기도 일산소방서 변정원 소방관이 15분 37초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윤 소방교는 "한 달 정도 대회를 준비했음에도 50층, 70층, 90층 모두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참고 올라갔다"며 "같은 소방서 직원들이 많이 도와줘서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최선을 다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필코 구한다" 각오 몸소 보여준 소방관들
이날 대회에 참여한 소방관들은 하나같이 '기필코 구조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서울 마포소방서 상암센터 정양훈 진압대장은 "구조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계단을 올랐다. 만약 실제 화재 현장이라면 소방관은 고층 건물에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구조자를 데리고 내려올 체력까지 필요하다"며 "이번 대회처럼 많은 진압대원이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방화복 부문 최고령자로 참가해 완주한 대구 중부소방서 서정관 소방경(59·남)은 "계단을 오를 때는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실제로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난 상황을 생각했다"며 "화재 현장에서 활동하는 진압대원으로서 고층 건물에 올라 화재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체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대회를 주최한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이번 대회로 전국 소방공무원의 체력과 정신력을 보여줬을뿐만 아니라 단합의 계기가 됐다"며 "어떠한 재난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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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김혜민 기자 m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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