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환칼럼] 기시다의 3개 화살이 두려운 이유
日이 서서히 깨어나는 사이
韓은 4류 정치에 발목 잡혀
글로벌 경쟁서 낙오할 수도
노인들 고독사 왕국, 만성 디플레 국가, 코로나 대응 후진국…. 불과 2~3년 전만 해도 부정적인 뉴스들만 넘쳐났던 일본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면 뭔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든다.
먼저 '유메시마 프로젝트'. 오사카 앞바다의 인공섬 유메시마에 1조엔(약 10조원)을 투입해 2029년까지 카지노와 호텔 3개, 컨벤션센터를 설립한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추진본부장을 맡았고 카지노 규제도 처음으로 풀었다. 복합리조트가 개장하면 연간 20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 것으로 내각부는 예상했다. '유메시마'는 한국어로 '꿈의 섬'인데, 이곳에서는 2025년 4월부터 오사카 엑스포가 먼저 열린다.
그다음은 '실리콘 아일랜드'. 50년 이상 묶였던 그린벨트 규제를 풀어 첨단 반도체 용지로 활용하는 계획이 이달 초 발표됐다. 히로시마에 투자 계획을 밝힌 미국 마이크론, 구마모토에 들어선 대만 TSMC, 홋카이도에 건설 중인 자국 라피더스의 협력 업체들이 용지 확보에 난항을 겪자 일본 열도 전체의 농지와 임야 규제를 푼 통 큰 지원 대책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자산운용특구'.
2000조엔에 달하는 가계 자산을 앞세워 해외 자산운용사를 유치하겠다는 금융허브 전략이다. 중국·홍콩에서 이탈하는 자본 유치도 정조준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유엔총회 참석 때 이 구상을 내놨고, 내각부는 영어로 모든 행정처리가 가능한 후속 법안을 의회에 곧 제출한다.
필자는 이들 프로젝트를 '기시다판 3개의 화살'이라고 부르고 싶다. 10년 전 양적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으로 구성된 아베노믹스의 3개 화살은 거시적이면서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이에 비해 기시다의 화살들은 목표를 훨씬 더 명확하게 설정했다. 돈이 모이고, 일자리가 넘치는 나라로 일본 열도를 개조하겠다는 것이다.
유메시마 프로젝트가 대박을 친다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에서 우리는 일본에 밀릴 수밖에 없다. 올해 일본을 찾은 관광객의 소비총액은 사상 첫 5조엔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여행수지를 앞세워 일본은 한국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잃어버린 30년에서 일본이 조용히 벗어나는 사이, 우리는 올해 1%대 저성장이라는 낯선 성적표를 받아든다.
실리콘 아일랜드는 3개의 화살 중 가장 두렵다. 삼성과 SK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기업의 노력만으로 일본 열도에서 예열을 마친 '글로벌 연합군'을 상대하기는 벅찬 일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은 전력·용수 등 인프라가 적기에 구축될지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지자체 협력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회 반도체 특위는 출범 후 10개월 동안 불과 5시간 회의를 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 현장 방문 때는 의원들이 절반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산운용특구도 위협적이다. 중국·홍콩에서 이탈하는 자금을 국내로 유치하려는 전략이 우리한테 있기는 하나. 역대 정권이 번번이 실패했던 '금융 허브' 어젠다는 어느덧 사문화된 지 오래다. 일본의 성공을 예단할 순 없지만 우리는 그저 손가락을 빨고 있을 뿐이다.
'같이 잘사는' 세계화 노멀이 막을 내린 시대. 촌각을 다투는 글로벌 시장에선 내가 먼저 화살을 쏘지 않으면 상대방한테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어떤 화살을 준비하고 있나. 글로벌 경쟁이 아니라, 내부에서 상대 진영을 겨냥한 화살촉만 잔뜩 가다듬고 있지는 않나. 4류 정치, 3류 행정의 구태를 끊어내지 못하면 인구 구조 개선과 노동시장 개혁도 물 건너간다. 우리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중진국 함정이 더 가깝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필자 주변엔 더 많은 것 같다.
[채수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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