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출구 전략’ 갈피 못 잡는 이스라엘···‘하마스 절멸’ 이후 가자지구는?

선명수 기자 2023. 10. 2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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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지상전’ 경고에도 전후 구상은 부재
미국 “‘플랜B’ 포함 출구전략 마련하라”
‘하마스 제거’ 이후 통치 전략 두고 고심
PA 대안 거론···“서안에서도 무너질 판” 지적도
지난 2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마스 절멸’을 목표로 연일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경고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정작 전쟁 이후를 대비한 출구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 내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 이후 가자지구 통치 방식 등 전후 구상을 마련하지 못한 것에 미국이 우려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상전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플랜B’와 지상전 성공 후 전쟁을 마무리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이스라엘에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내부 정보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하마스 축출 이후에 대해 합의된 계획이 없다”면서 “이스라엘의 전략 부재에 미국 관리들이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수차례 예고해온 지상전이 지연되고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일부 정부 인사들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국경 보호를 위한 ‘완충지대’를 만드는 안,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내각 안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핵심은 ‘하마스 제거’ 이후 이들을 대체할 가자지구 통치 세력으로 누구를 세울지의 문제다. 미국 정부 인사들에게도 회람된 비공식 전략 문서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기한 점령을 피하는 것을 전제로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에 가자지구 통제권을 넘기는 방안, 주변 중동 국가들에 재건 및 평화 유지를 맡기는 방안이 공통적으로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를 공격해도 이곳을 재점령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가자지구 재점령은 이스라엘 정부에게도 부담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이곳에 정착촌을 만들어 유대인을 이주시켰지만, 2005년 완전히 철수했다. 이스라엘이 이곳을 재점령한다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저항은 불보듯 뻔한 일이고, 국제사회의 비판도 무시할 수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공개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PA에 가자지구 통제권을 넘기는 방안 역시 PA가 이미 팔레스타인인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세속주의 성향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파타)가 이끌고 있는 PA는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에 대패한 뒤 이듬해 가자지구에서 축출되면서 현재는 그 세력이 서안지구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하마스가 축출된다 하더라도 87세 고령의 지도자 마무드 아바스가 이끄는 PA가 가자지구를 장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번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서안지구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서안지구에서 PA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불신과 분노는 이미 임계치에 이른 상황이다. PA는 그간 이스라엘 극우 내각이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는 것을 제어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인의 공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보호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미 서안지구의 실질적인 치안 통제권은 ‘카타이브 제닌’ 등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등이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PA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하마스가 촉발한 이번 전쟁에서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의 인기는 높아지는 반면 PA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발생한 알아흘리 병원 참사 직후 서안지구에서는 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지만 이들의 분노는 이스라엘 대신 ‘부패하고 무능한’ PA를 향했다. 서안지구 수도 라말라의 한 파타 관리는 “가자에서 하마스가 붕괴하면 서안에서 파타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다친 부상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가자지구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임시 통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축출 후 유엔의 지원 하에 중동국가가 참여하는 ‘임시 정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이 이 방안에 동의하고 실제 지원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직 중동 담당 선임 분석관인 윌리엄 어셔는 “임시 정부 수립도 쉽지 않지만, 중동 국가들의 동의를 얻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이들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내다봤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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