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놀이터’ 가자지구 시가전은 왜 어려울까

김서영 기자 2023. 10. 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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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 유니스에서 불도저 한 대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건물 잔해 더미를 파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상작전을 개시할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시가전’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광대한 지하터널과 복잡한 도시 구조, 하마스 대원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빽빽한 인구밀도 등이 가자지구를 ‘악마의 놀이터’로 만들 것이란 우려다. 이스라엘군과 하마스가 게릴라전의 늪에 빠질 경우 막대한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는 “악마의 놀이터”

먼저 가자지구의 도시 구조부터가 장벽이다. 가자지구는 한국의 세종시만한 크기에 200만명이 넘게 몰려 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일자로 뻗은 좁은 도로 양 옆에 높은 건물이 포진해 있으며, 지하에는 하마스가 파놓은 길이 500㎞ 가량의 터널이 가자지구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 구조는 방어하는 쪽보다는 진입하는 쪽에 더 큰 위험 부담을 안긴다. 최근의 전쟁 사례를 보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자군의 5~8배 규모로 쳐들어오는 러시아군에 맞서 마리우폴을 거의 3개월 동안 방어했다. 이때도 우크라이나는 도시 내 건물과 지하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수년 동안 전쟁을 준비해 왔을 하마스가 도시 곳곳에 어떤 군사시설을 숨겨 놨는지 이스라엘군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아래에 로켓 공장이 있다거나, 모스크에 무기가 보관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6년 미군이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기 위해 이라크 모술에서 시가전을 벌일 때도 아파트 문이나 자갈에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었고, 불타는 쓰레기와 냉장고 같은 것들이 군용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중동의 시가전을 연구한 미 육군 전략가 토마스 아놀드 중령은 “상황이 추악해질 것이다. 도시는 악마의 놀이터다.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든다”면서 이러한 도시의 특성이 “(이스라엘의) 전략적 이점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화염이 일면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민간인 틈에 끼어 있는 하마스 대원만 골라 목표로 삼기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 주민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강력히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도로가 초토화된데다 남쪽까지 폭격이 이어지고 있어 피난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이스라엘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과적으로 민간인의 대규모 살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이라크에서도 이미 벌어졌던 일이다. 2004년 이라크 전쟁 당시 팔루자 진입을 시도했던 미군은 희생이 너무 커서 결국 철수한 뒤 6개월 후 다시 시도해야 했다. 252일을 끌었던 모술 전투에서는 민간인 약 10만명이 숨지고 건물 1만3000채가 거주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팔루자 전투에 참전했던 한 전직 해병대 중령은 “피난을 갈 수 없었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마스는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점도 관건이다. 근래 벌어진 전쟁은 빠르게 끝난 적이 별로 없다. 모술 전투는 3개월을 예상했으나 9개월이 걸렸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단숨에 점령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전쟁은 만 2년을 향해 가고 있다.

미 육군사관학교 현대전쟁연구소의 존 스펜서는 “이스라엘은 그동안 거의 모든 전쟁에서 시간과의 싸움을 했으며, 국제적인 압력으로 작전을 중단해야 하기 전에 목표를 달성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서방, 신중한 지상전 강조
이스라엘 군대가 24일(현지시간)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끝내 지상전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서방은 지상전을 말리는 대신 “국제인도법을 준수해서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만 내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이라크 팔루자 전투 경험이 있는 군사고문팀을 이스라엘에 파견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논의하면서 “마음이 아닌 머리를 쓰도록 하라”고 조언했다고 한 소식통은 CNN에 전했다. 앞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한 국방장관도 “우리는 이스라엘에 ‘하지 말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다만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을 해보고 전략을 짜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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