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후위기 상징 된 구상나무를 살려라···지리산 묘포장 가보니

김기범 기자 2023. 10. 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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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연구원이 기후변화 대비를 위해 지리산국립공원 세석평전 일대에 마련해 놓은 구상나무 묘포장. 김기범 기자

지난 20일 지리산 국립공원 세석평전대피소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잠시 벗어나 숲속을 헤치고 들어가자 작은 침엽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묘포(묘폭을 키우는 밭)가 나타났다. 특유의 크리스마스트리 모습을 한 ‘아기 구상나무’ 1000여그루가 햇볕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기후변화에 대비해 구상나무 묘목을 기르는 곳이다.

국립공원연구원이 기후변화 대비를 위해 지리산국립공원 세석평전 일대에 마련해 놓은 구상나무 묘포장. 김기범 기자

이날 동행한 국립공원연구원 명현호 기후변화연구센터장 등에 따르면 국립공원연구원은 이 묘포장에 2021년부터 어린 구상나무 2000그루 정도를 옮겨심었다. 현재 약 1000그루가 살아남아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다. 수령 10여년 정도인 이들 묘목의 키는 30~50㎝ 사이다. 구상나무를 포함해 국립공원연구원이 기후변화에 대비해 기르고 있는 전체 아고산대 상록침엽수는 약 3만그루다.

지리산국립공원 세석평전 일대의 구상나무숲. 김기범 기자

구상나무는 주로 해발고도 1500m가 넘는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한국 토종 식물이다. 지리산과 설악산, 무등산,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등 큰 산의 중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대량 고사가 확인됐다. 잎이 떨어져 나가고, 하얀 줄기와 가지를 드러낸 구상나무는 기후변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명현호 국립공원연구원 기후변화연구센터장이 지난 20일 지리산국립공원 세석평전 일대에 마련해 놓은 묘포에서 구상나무 묘목들을 살펴보고 있다. 김기범 기자

구상나무가 고사한 숲을 그대로 두고 자연적인 천이가 일어나도록, 즉 활엽수 등이 침투하도록 내버려 둘 지, 구상나무를 옮겨심어 숲을 다시 복원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명현호 기후변화연구센터장은 “구상나무숲을 다시 복원하려 할 때 10~20년 정도 자라있는 나무가 없다면, 그만큼의 세월을 허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상나무숲 복원은 미리 구상나무 묘목을 키워놓아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다.

지난 20일 지리산국립공원 세석평전 정상부의 습지 모습. 김기범 기자

세석평전 인근은 지리산에서 구상나무 군락이 가장 건강하게 유지되는 곳이다. 묘포장 주변에는 자연적으로 종자가 퍼져서 발아하고, 잘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명 센터장은 “세석평전에서 구상나무가 비교적 잘 살아남는 것은 정상부에 작은 습지가 있어 물이 비교적 풍부해 수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바람 영향도 적게 받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상록 침엽수 고사목 분포도. 지리산 침엽수의 대부분은 구상나무로 생육하고 있는 나무는 69만4164개체, 고사목은 7만558개체로 추정된다. 국립공원연구원 제공.

경남 산청군의 지리산국립공원 거림탐방지원센터부터 세석평전 대피소까지 3시간 정도 올라가는 동안 해발고도가 1000m를 넘는 지역치고는 풍부한 수량의 계곡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구원은 습지가 말라 육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지난 20일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의 구상나무숲의 모습. 고사해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기범 기자

구상나무 등 아고산대 상록침엽수가 쇠퇴하는 정황은 지난해 12월31일 국립공원연구원에서 펴낸 ‘2022 기후변화 생태계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에 자생 중인 상록침엽수는 총 76만그루로 이 가운데 고사목은 9.2%에 달했다. 설악산은 26만그루에 고사목 7.6%, 덕유산은 3만4000그루에 고사목 4.8%, 태백산은 4만9000그루에 고사목 1.1%, 오대산은 3만8000그루에 고사목 6.5%, 소백산은 1만6000그루에 고사목 0.9% 등으로 나타났다. 아고산대가 넓은 지리산과 설악산의 침엽수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모니터링 보고서에는 고사목 비율뿐 아니라 이들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 오대산, 소백산 침엽수의 해발고도별 분포, 해발고도별 고사목 분포, 지형과 습기 정도에 따른 고사목 분포 등의 상세한 기초조사 결과도 담겨있다. 이 같은 기초조사 결과는 앞으로 구상나무 군락 쇠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판단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일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의 구상나무숲의 모습. 고사해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기범 기자

현장 조사와 항공사진 등을 이용한 연구, 해외 연구결과 등을 통해 국립공원 연구진은 현재 고사한 구상나무들의 수령이 70~80년 정도이며, 지역별로 고사 원인도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같은 지리산이라 해도 강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과 수분이 부족한 지역 등은 고사 원인이 다르다. 세석평전처럼 구상나무 고사목이 별로 없는 지역도 있지만 천왕봉처럼 해발고도가 높고, 바람이 강한 지역에서는 고사목이 많은 편이다. 실제 세석평전 바로 인근 촛대봉에 올라 바라본 천왕봉에서는 고사해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의 비율이 높았다.

국립공원연구원이 지리산 전역에 분포하는 구상나무의 수령을 확인한 결과 평균 수령은 약 80년으로 나타났고, 최대 수령은 208년이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나무인 주목만큼 긴 세월을 버티지는 못하지만 구상나무 역시 살아 있을 때 100년 이상, 죽어서도 100년 가까이 버틴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국립공원연구원 연구진과 국립공원공단 자원보전처, 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 등이 한국환경생태학회지에 2021년 8월 게재한 논문을 보면 지리산 벽소령의 구상나무 수령은 평균 102년, 반야봉은 평균 91년 등으로 지역별 구상나무의 수령 역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일 국립공원공단이 과거 헬기장으로 사용됐던 지리산국립공원 세석평전대피소 인근 부지를 숲으로 복원하기 위해 구상나무들을 옮겨 심어놓은 모습. 김기범 기자

국립공원연구원은 지리산 구상나무에 대한 조사, 연구를 하기 위해 세석평전에 기후변화스테이션을 설치하고, 연중 겨울철을 제외하고 상시로 모니터링을 시행 중이다. 구상나무 군락뿐 아니라 지리산 지역의 미기후에 대해서도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미기후란 지면에 가까운 대기층의 기후를 말한다. 보통 지면에서 1.5m 높이 정도를 대상으로 하며, 식물의 생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명 센터장은 “앞으로 설악산, 오대산 등에도 기후변화스테이션을 마련해 아고산대 식물 현황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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