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전도, 추격전도 없는데 긴장감이 넘친다···데이비드 핀처의 ‘더 킬러’[리뷰]

김한솔 기자 2023. 10. 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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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프랑스서 5일 밤낮 타깃 살해
여친 폭행한 다른 킬러 2명 보복도
총격·추격전 없어도 영화 내내 스릴
영화 <더 킬러> 의 킬러 역을 맡은 마이클 패스밴더. 넷플릭스 제공

만약 현실 세계에 킬러가 있다면 액션 영화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일단 액션 영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총격전, 자동차 추격전, 일대일 몸싸움 같은 것은 안 할 가능성이 높다. 그건 너무 눈에 띄는 일이니까.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네 죄는 무엇인가’라고 읊는 일은 더더욱 안 할 것이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사라지기 위해 애쓸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 <더 킬러>에 나오는 킬러처럼.

25일 개봉한 <더 킬러>는 매우 조용한 영화다. 일단 주인공인 킬러(마이클 패스밴더)가 누군가와 말을 섞는 일이 거의 없다. 대신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킬러가 머릿속으로 되뇌는 생각이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킬러는 ‘작업’ 전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다. 청부살인업자인 킬러는 프랑스에서 5일 밤낮을 기다린 타깃을 살해하는 데 실패한다. 그는 처음 겪는 일에 잠시 당황하지만, 신속하게 프랑스를 탈출해 자기 집이자 은신처가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큼직한 발자국이 찍혀있다. 안 좋은 상황을 직감한 그는 총을 빼 들고 냅다 집 안으로 달려들어 간다. 누군가가 심하게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다. 병원에는 킬러의 여자친구가 얼굴이 엉망이 된 채 누워있다. 킬러는 자기에게 연락한 브로커, 브로커에게 일을 의뢰한 의뢰인, 여자친구를 폭행한 또 다른 킬러 두 명을 찾아내 하나씩 제거한다.

영화 <더 킬러> 스틸 컷. 넷플릭스 제공

감독은 화려한 액션보다 ‘직업인’으로서의 킬러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킬러는 강박적이다. 그는 표적이 묵는 호텔 방 창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잠을 잘 때조차 테이블 리프트 높이를 조정해 창문과 같은 높이로 만들어 둔다. 눈을 뜨면 바로 표적의 방을 볼 수 있도록.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스마트워치로 자신의 심박수를 체크한다. 타깃을 향해 총구를 당기기 직전, 그의 심박수는 65bpm의 차분한 상태다.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도주 중 하룻밤을 호텔에서 묵게 되자 유리컵을 방문 손잡이 위에 올려둔다. 누군가 밖에서 문 손잡이를 약간만 돌려도 쨍그랑, 컵이 깨질 것이다.

영화 <더 킬러>에서 킬러의 타깃 중 한 명으로 출연한 틸다 스윈튼. 짧은 출연 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넷플릭스 제공

먹는 데 시간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단백질 중심의 효율적인 영양을 섭취한다. 맥도날드 모닝 세트를 시켜서 빵은 빼고 계란, 햄 같은 내용물만 먹는다. 이동 시에 먹는 것도 바나나, 삶은 계란 등 운동선수 식단 같은 것들이다. 끝없는 기다림, 생활화된 경계태세, 단조로운 식단. ‘권태로움을 견디지 못한다면 이 직업은 당신과 맞지 않는다’는 내레이션이 그의 일상을 요약한다. 작전에 실패해 타깃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뒤 비행기에서 곯아떨어진 모습은, 고된 출장을 마치고 잠든 평범한 샐러리맨과 흡사하다.

킬러가 되뇌는 말은 대부분 ‘마인드 컨트롤’이다. ‘대응하되 임기응변하지 않는다’ ‘보수가 따르는 싸움만 한다’ 같은 것들이다. 영화 속 킬러는 웅거, 매디슨, 커닝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 이름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대사도 적고, 총격전이나 추격전은 아예 없는 영화인데도 내내 스릴이 넘친다. 알렉시 놀랑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했다. 1998년 출간된 출간된 그래픽 노블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연재 중이라고 한다. 25일 CGV 단독으로 극장 개봉 후 11월1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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