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美스러운 만남 속에서 농염한 풍미가 탄생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10.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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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나파밸리 '더블 다이아몬드'
美서 생산된 와인이지만
프랑스산 오크통서 숙성
입안 가득 캐러멜 풍미
작년 '올해의 와인' 선정
짙은 존재감 호불호 갈려
더 거센 매력 원한다면
슈레이더 와이너리 스타
'올드 스파키'로 선택해야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다큐멘터리 영화 '몬도비노'에서 말합니다. "프랑스 와인 메이커가 감사해야 할 것은 테루아가 아니고 프랑스산 오크통이다. 와인의 미묘한 맛은 바로 그 통에서 나온다."

로버트 파커가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된 미국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프랑스 와인업계를 긴장시킵니다. 실제 프랑스 보르도의 일부 와인 생산자들은 로버트 파커에게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나파밸리 스타일로 양조 방법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미국 나파밸리 와인 '더블 다이아몬드'는 로버트 파커가 강조한 '프랑스산 오크통'이 떠오르는 와인입니다.

최근 미국 주류기업 콘스텔레이션 브랜즈(Constellation Brands)가 자사의 대표 와인 슈레이더 셀러스(Schrader Cellars·이하 슈레이더)와 더블 다이아몬드(Double Diamond)의 2021 빈티지(포도 수확연도) 출시 행사를 서울에서 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와인이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 2021년'입니다. 입안 가득 퍼진 캐러멜 풍미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의 오모테산도에서 '핫'하다는 '넘버슈가'의 수제 캐러멜을 물고 와인을 씹어 마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더블 다이아몬드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러멜 향은 오크통 숙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나파밸리 와인이지만 미국 오크통이 아닌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킵니다. 54%는 새 오크통, 나머지 46%는 슈레이더에서 사용했던 '다르나주(Darnajou)' 오크통을 쓴다고 합니다. 다르나주 오크통은 특별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중에 '피터 마이클'이라는 너무나도 멋진 샤르도네를 만드는 와이너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사용하는 오크통이 프랑스산 다르나주 오크통입니다.

슈레이더의 제너럴 매니저인 제이슨 스미스가 슈레이더의 포도 클론 31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 포도보다 크기가 작아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낮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드는 와인을 '보르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프티 베르도를 적당한 비율로 블렌딩해 만듭니다. 이렇게 여러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드는 이유는 산도, 구조감, 타닌 등 각 포도 품종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서입니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만 만들었습니다.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이 프랑스산 오크통과 어울려 만든 '마법'이 더블 다이아몬드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슈레이더가 먼저 사용한 오크통을 더블 다이아몬드가 재사용했다는 내용에서 보듯 더블 다이아몬드는 슈레이더의 세컨드 와인이란 점입니다. 와인 생산자의 대표 와인을 보통 그랑 뱅(Grand Vin) 또는 퍼스트 와인, 그다음급 와인을 세컨드 와인으로 부릅니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상대적으로 '어린 포도나무'에서 만든 와인입니다.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크뤼급 와인들은 대부분 세컨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었던 것도 세컨드 와인을 도입해 '품질 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세컨드 와인은 그랑 뱅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지금 당장 마시기엔 손색이 없어 와인 애호가들에겐 인기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만 해도 샤통 무통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인 르 프티 무통 드 무통 로칠드 2009년 빈티지가 같은 날 마신 샤토 무통 로칠드 2005년, 샤토 무통 로칠드 2010년보다 더 맛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랑 뱅 '슈레이더'와 세컨드 와인 '더블 다이아몬드'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2021년 빈티지만 놓고 보면 지금 당장 마시기에는 더블 다이아몬드가 슈레이더보다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슈레이더는 좀 더 기다렸다 마시면 좋을 '숙성형' 와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만큼은 형(슈레이더)보다 아우(더블 다이아몬드)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사실 '세컨드 와인'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더블 다이아몬드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훌륭한 와인입니다. 2022년 와인스펙테이터가 '올해의 와인'으로 더블 다이아몬드 2019년 빈티지를 선정했습니다.

최고의 와인에 꼽힌 2019년 빈티지가 있고 올해 2021년 빈티지를 출시합니다. 그럼 2020년 빈티지는 어떻게 됐을까요.

슈레이더와 더블 다이아몬드 모두 2020년 빈티지는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해 일어난 캘리포니아 산불로 '연기'가 포도껍질에 침착됐을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마스터 소믈리에(MS)이자 슈레이더의 제너럴 매니저인 제이슨 스미스 씨는 "2021년 빈티지는 구조감, 타닌, 산도의 밸런스가 모두 좋다"면서 "품질과 복합미 모두에서 2021년 빈티지가 2019년 빈티지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물론 '더블 다이아몬드'의 진한 캐러멜 풍미 때문에 음식과 함께 마실 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오크 숙성을 통한 복합미가 와인 본연의 '깊은 맛'을 방해한다며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와인을 마시고 싶어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더블 다이아몬드'의 맨 얼굴이 궁금해 오크통 대신 스테인리스 통에서 양조한 와인이 있는지 질문했는데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와인은 개인 취향이 중요합니다.

실제 이날 시음 참석자들은 저와는 다르게 역시 슈레이더의 '올드 스파키'를 가장 선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슈레이더 '올드 스파키'는 슈레이더의 '간판스타'입니다. 좀 더 깊이감이 느껴지는 와인입니다.

일반 와인병의 2배인 1.5ℓ 매그넘 와인만 생산합니다. 올드 스파키처럼 장기 숙성형 와인에는 매그넘 사이즈가 더 이상적이라는 철학 때문입니다. 이 또한 슈레이더 올드 스파키의 특징입니다. 불을 뿜는 '용' 라벨이 인상적입니다.

슈레이더의 와인 중 평론가들에게 가장 많은 16번이나 100점을 받은 와인이 '올드 스파키'입니다. 특히 2007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와 와인 애드보케이트에서 동시에 100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올드 스파키의 농축미 때문인지 '위스키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슈레이더 와인 라인 중에서는 '헤리티지 클론' 2021빈티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른 와인들에 비해 '산미'가 뛰어납니다. 진한 신대륙 카베르네 소비뇽에 지친 미각을 달래줍니다. 헤리티지 클론은 포도 '클론(Clone)'이 다른 슈레이더 와인들과 다릅니다. 헤리티지 클론 와인은 '클론 31' 포도를 쓰는데 포도알과 송이가 다른 포도에 비해 확연히 작습니다. 포도 알이 작고 송이도 작으니 당연히 단위면적당 수확량도 낮습니다. 사업적으로는 좋지 않은 포도 클론입니다. 하지만 와인 소비자에게 정말 맛있는 와인을 선사하는 포도 클론입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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