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단어와 글은 아무리 작아도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어”
“단어와 글은 아무리 작아도 가로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처럼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가 25일 경기 파주에서 열린 ‘2023 DMZ 평화문학축전’에서 전쟁과 여성, 평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 넘도록 끝나지 않는다. 쉬블리는 경기문화재단이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개최한 ‘2023 DMZ 평화문학축전’ 참석차 방한했다.
쉬블리는 지난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자유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주최 측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기습 공격한 사태 직후 시상식을 여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그의 소설 <사소한 일>(2017)은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한 베두인 소녀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마침내 살해당한 사건과 이를 좇는 여성이 겪는 일을 담았다. 그는 “전쟁에서 여성은 연약하고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 서사에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쉬블리는 이날 토론에서 2014년 7~8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일어난 최대 전면전인 제3차 가자전쟁 이야기부터 꺼냈다. 2014년 7월 중순 어느 날 오전 8시29분, 팔레스타인 라말라알비레주에 있었던 쉬블리는 아랍어로 경고하는 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당신은 충분히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
쉬블리는 이스라엘 군대가 주거 건물을 폭격하려고 할 때 거는 전화라고 했다. 그는 “메시지는 끝나고, 전화선은 끊어지고, 저는 얼어붙었다”며 “ ‘충분히 경고받았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를 전쟁범죄나 인류에 대한 범죄로 고발하는 능력을 포기하게 된다. 공격은 반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공습 경고 전화를 받고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해 집과 가족을 잃은 한 남성 이야기를 들려줬다. 쉬블리는 “할 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단어들이 제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쉬블리는 팔레스타인을 오가며 팔레스타인 라말라알비레주에 있는 비르제이트대학교 문화연구학 강의를 한다. 글을 쓰지만 여전히 폭격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절망감이 그를 팔레스타인 강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베를린에서 저는 글 쓰는 행위를 둘러싼 고립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는 동안 홀로 앉아 글을 쓰는 것 말이죠. 때때로 제 글은 제가 이 파괴(전쟁)를 목격하는 것에 따라 형성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심지어 제 인생에서조차 무언가를 바꾸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쟁과 폭력은 학교라고 예외가 되지 않았다. 쉬블리는 “제 학생들은 보통 20대인데, 대부분 대학을 다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며 “외부의 삶은 교실을 폭력적으로 침범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존 로크의 논문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까지 논의할 때, 우리는 ‘비자유’에 포위되어 있다”며 “(학생 중 일부는) 군대가 구금했기 때문에 수업에 결석하고, 또 다른 학생은 이스라엘 점령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총에 맞아 몇주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이 계획된 공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무엇을 말하거나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보려고 할 때, 갑자기 마비가 됩니다.”
그가 결국 내뱉은 단어는 ‘패배’였다. 쉬블리는 여러번 ‘절망감’과 ‘패배감’을 말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로서 희미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둠 속의 빛이 책장을 비출 때, 그는 책장의 그림자를 바라봤다고 했다. 그는 “희미한 빛이 그 밤에 몰래 조용히 흔적을 남긴 것은 글쓰기를 다시 배우라는 교훈처럼 보인다”고 차분히 말했다.
이날 쉬블리는 “저는 글을 써서 내놓는 사람일 뿐,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며 시상식 취소에 관한 언급은 피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대해서도 “때론 침묵 속에서 글을 쓰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정도상 ‘2023 DMZ 문학축전’ 조직위원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작가들의 발언, 시와 소설이 체제를 바꾸지는 못한다. 전쟁을 어떻게 막겠는가. 그럼에도 작가와 문학은 사람들 사이에 전쟁과 평화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문학은 이 체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장르가 아니라 질문하는 장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시예비치 “예술이 버팀목이 되어야”
르 클레지오 “문학은 모든 시대에서 폭력을 이겨”
이날 행사에서는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무대에 올라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에서 문학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출생한 르 클레지오는 전쟁을 마주하는 지금, “전쟁을 위해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며 “작가는 몽상가들이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모든 시대에서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항상 최선의 방법을 찾아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한다”며 “평화를 가져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러시아 방송에서는 사망자가 200~300명이 된다는 소식을 평화로운 목소리로 방송하고 있다. 푸틴은 전쟁터의 사망자 숫자를 통계 수치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통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거론하며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며 “예술이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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