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허기 달래려 굴 따던 칼인데" 눈물바다된 선감학원 유해 발굴 현장
50여명 선감학원 피해자, 단추 등 유품 보며 눈물 짓기도
(안산=뉴스1) 김예원 기자 = "사진을 보자마자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죠. 그 친구의 '굴 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5일 낮 12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야트막한 경사의 뒷산엔 굵은 흰 색 선으로 그어진 구덩이 20여 개가 눈에 띄었다. 성인 기준 한 뼘 정도 되는 얕은 깊이의 구덩이 옆엔 어린아이들의 치아와 단추, 허리끈 장식들이 흙빛을 띠고 현장에 보관돼 있었다.
◇50년 지났지만 '아픔' 그대로…유해발굴 서둘러야
현장에서 발견된 유품 중엔 칼 모양을 한 납작한 쇠붙이도 있었다. 1970년부터 5년간 이곳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됐다던 이모씨는 입원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1970년부터 5년간 이곳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이씨는 학원 내 구타와 괴롭힘에 고통받던 시기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친구가 굶주림을 이기기 위해 바다 굴을 캐먹을 때 이와 비슷한 칼을 썼다며 떨리는 손으로 연신 구덩이 속 흙을 손으로 훔쳤다.
이날 희끗한 머리로 현장을 찾은 50여명의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쉬거나 말을 잇지 못했다.
좋은 곳에 데려가 준다는 꼬드김에 속아 선감학원에 8년 간 감금돼 있었다던 이모씨는 "단추, 허리끈들을 보면 다 그때 우리가 입고 쓰던 것"이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현장을 바라봤다.
"50년이 넘었지만 여OO라는 친구 이름이 아직 생각나요. 그 친구는 바닷가 인근에 더 얕게 묻혔으니 지금은 흔적도 없겠죠."
말없이 한참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던 천모씨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누나를 보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길거리에서 붙잡혀 선감학원에 끌려갔다. 천씨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유해 발굴에 힘써줘서 친구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선감학원 아동 집단 암매장 발굴 현장 공개…정부·지자체 책임은 지지부진 부랑자 계도를 명목으로 어린아이를 동의 없이 끌고 와 구타, 강제 노역 등을 자행했던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 사건 발굴 현장이 공개됐다. 진화위는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선감도 산 37-1에서 2차례 발굴을 진행한 결과 45기의 분묘를 발굴유해인 치아 278점과 단추 등 유품 34점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진화위는 이곳 현장엔 150여구의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 외에도 6곳이 추가 매장지로 언급되는 점, 진화위가 확보한 원아대장 등에서 원생 4689명 중 834명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고려할 때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실 규명을 위한 유해발굴은 더딘 실정이다. 진화위는 지난해 10월 담당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선감학원 운영주체였던 경기도에 유해발굴의 신속한 추진 및 추모공간 마련을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진화위는 올해 초 선감학원 유해발굴을 위해 경기도를 '유해발굴 자치단체 보조사업자'로 선정 후 1억5000만원을 지자체에 지원하기로 했지만 경기도가 이를 반려하며 발굴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유해 및 유품을 보관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등 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발굴 유품 및 유해는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와의 논의가 1년 가까이 진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1차 시굴 때 나온 물품 및 유해는 이번 발굴을 주관한 선사문화연구원에서 임시 보관 중이다.
진화위는 이날 시굴 결과 및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오는 12월 2차 진실 규명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이번 현장은 진화위의 첫 인권침해 사건의 발굴 현장으로 그 의미가 크다"며 "국가와 지자체에 권고한 실질적인 책임 이행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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