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마다 효과 발휘하던 서정진 ‘정면돌파’의 리더십, 이제 안먹히나

김명지 기자 2023. 10. 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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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경영 복귀 후 활발한 대외 활동
사흘 동안 두 차례 공식 석상 등장
셀트리온 헬스케어 주가 받쳐야 하는데
국민연금 주식매수청구권 불확실성
자사주 매입 소각 약속했지만 갈수록 효과 떨어져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2에서 열린 셀트리온 그룹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은 2021년 3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경영에 부족한 점이 생기면 소방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하겠다”고 했다. 회사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지만, 위기가 오면 언제든 회사를 위해 돌아오겠다는 포석을 깔아둔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인 올해 3월 서 명예회장은 경영 복귀를 전격 선언했다. 셀트리온은 그 당시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서 명예회장만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경영진에서 판단했고, 복귀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서 명예회장은 복귀 이후 셀트리온의 소방수를 자처하며 고군분투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는 5시간 40분 동안 주주들과 끝장 토론을 벌였다. 지난 8월에는 온라인 간담회를 여러 차례 열고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을 발표했다. 합병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3일 임시주주총회에 직접 등장한 데 이어 이틀 만인 25일 서울 기자간담회를 자처했다.

하지만 이른바 ‘서정진 매직’의 효과는 시들했다. 이날 셀트리온 주가는 14만9400원으로 하락(0.47%) 출발했다. 기자간담회 직후 주가가 15만 400원으로 반등하는 듯했지만 이날 오후에 14만 9500원까지 미끄러지며 15만 100원에 마감했다. 서 회장이 복귀한 올해 3월 한 달 동안 셀트리온의 주가가 14만 원대에서 18만 원까지 수직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서 회장이 이날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주가를 떠받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셀트리온은 합병안을 통과시키면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을 내달 13일까지로 정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가 보유 주식을 회사에 정당한 가격에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 기간에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기준가보다 낮다면, 투자자는 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이득이다.

지난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97.3%의 찬성률로 통과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셀트리온의 지분 7.4%(1087만7643주)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문제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은 지난 주총에서 합병안에 대해 기권하며 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 전부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한다고 가정하면 회사는 1조6405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현재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의 현금성 자산을 다 합해도 1조원 남짓에 그친다. 이날 셀트리온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준 가격(15만 813원)에 미치지 못하는 15만 100원에 마감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셀트리온과 셀트리온 헬스케어의 주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 대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인 짐펜트라(램시마SC의 미국명)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 허가 소식까지 공개했지만, 주가는 하락 마감했다. 오죽하면 셀트리온 종목토론방에서는 소액주주의 매수를 독려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셀트리온 사옥 전경.

셀트리온의 주가가 쉽사리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합병의 단기적 효과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두 회사 합병의 긍정적인 효과로 중첩되는 사업을 정리해 매출 원가율을 개선하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시너지가 나려면 오는 2025년은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중첩 사업을 정리하고, 재고 자산을 정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는 뜻이다. SK증권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램시마SC의 재고를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 하반기부터는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내년 하반기도 1년 후의 일이다.

서 회장이 임시 주주총회에서 “빚을 내서라도 합병을 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오히려 이런 주가 하락세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은 공매도(空賣渡) 세력의 공격에 늘 시달려 왔다. 공매도란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는 투자 기법이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게 되면 그 반대의 시세 조작도 가능하다.

앞서 이달 24일 셀트리온의 주가는 6% 넘게 깜짝 상승했다. 하지만 이는 3599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345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결정 때문이었다고 시장은 분석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올해 들어 5차례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이를 모두 더한 규모(200만 2241주)보다도, 전날 발표한 규모(242만 6161주)가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현금 공세는 지속하기에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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