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야스(円安) 명암]③ “슬픈 엔저”란 자조 나오는 日… BOJ ‘마이너스 금리’ 종료 다가온다

도쿄(일본)=박소정 기자 2023. 10. 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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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들어 엔·달러 환율 150円 터치 후 등락
“10년 이어온 금융완화정책 언제 종료?” 관심
‘장기화 부정 영향↑’ 평가+美 국채금리도 골치
“‘정상화’ 곧 도래”… 30~31일 BOJ 회의 주목

엔화 가치가 1달러당 150엔까지 떨어졌다. ‘엔저’란 말은 일본에서 ‘엔야스(円安)’라고 불린다. ‘값싸다’라는 뜻의 야스(安)를 혼용해서다. 우리나라에선 관광·수출 등 일본 입장에서 누릴 엔야스의 긍정적 효과들이 주로 부각되지만, 현지에서는 시름도 적지 않게 앓고 있다. 일본에선 ‘좋은 엔야스’인지, ‘나쁜 엔야스’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엔야스의 긍정·부정 영향은 일본은행(BOJ)의 완화적 통화정책 전환 여부와도 연관돼 관심이 모인다. 조선비즈는 엔저의 혜택을 누리고 또 홍역을 앓고 있는 일본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지난 3일 일본에선 1달러당 엔 시세가 장중 150엔까지 떨어져 현지 방송사와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1년 만에 ‘기록적 엔저’가 또 나타난 것이다. 일본 도쿄 신주쿠 일대에 있는 사설 환전소에도 1달러당 148~149엔대라고 쓰인 환율 전광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지난 20일 또다시 150엔을 돌파했다.

이런 현상의 바탕에는 미·일 금리 격차가 하나의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115엔 수준이었다. 그런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타개를 위해 급격히 금리를 인상하고, 일본은 기존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면서 엔화 약세 기조가 심화한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가을이 ‘강달러’가 초래한 엔저였다면, 올해의 엔저는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 정책의 영향이 더욱 컸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후지시로 코우이치(藤代 宏一)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달러와 달러인덱스(DXY) 상관관계를 놓고 작년과 올해의 양상을 비교하면, 올해는 엔화 약세 요인으로 일본은행의 금융 완화 정책의 영향(위상)이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환율 대응과 관련한 당국의 논의 과정에서, 일본은행에 완화 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4일 일본 도쿄의 시민이 시시각각 상승해 달러당 150엔에 근접한 환율과 계속 하락하는 닛케이 지수가 함께 표시된 전광판을 바라보는 모습. /연합뉴스

◇ “금융완화 10년, 도모한 경제성장 효과 크지 않았다”

1년 넘는 ‘엔저 시대’를 살아온 일본인들은 그 명암(明暗)을 논하면서, 이런 엔저를 부추긴 지난 10여년 간의 금융 완화 정책의 ‘종료 타이밍’을 언급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2013년 3월 양적·질적 금융 완화 정책에 돌입했고, 국채·위험자산 매입 확대, 수익률곡선 제어정책(YCC) 도입, 금리 조절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이를 지속해 온 바 있다.

일은의 금융 완화 정책이 ‘종료’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할만한 재료는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일은의 정책이 장기화하면서 당초 목표했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승현 대외경제연구원(KIEP) 일본동아시아팀 전문연구원은 ‘일본은행의 금융 완화 정책 10년의 평가와 향후 전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일은은 지난 10년간 금융 완화 정책을 통해, ‘엔화 약세→수출기업의 실적 개선→임금 인상·투자 증대→소득 증가·양질의 고용 창출 확대→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는 선순환과 경제 성장을 도모했지만, 총수요 증대 및 이를 통한 경제성장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부작용도 감지된다. 일은의 1차 타깃이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현재 목표치(2%)를 넘어서서 3%대 내외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올해 8월 일본 소비자물가는 5.6% 상승했다. 미국·한국 등에 비하면 낮지만, 일본으로서는 지난 30년간 서서히 경험했던 물가 상승세를 최근 20개월 만에 한꺼번에 겪은 것이라 충격이 크다. 김 연구원은 “엔저 때문에 수입 물가가 올라가다 보니, 가계나 민간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부담되는 부작용이 최근 더욱 부각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나쁜 엔저(悪い円安)를 넘어선 슬픈 엔저(悲しい円安)”라고 표현했다.

지난 4일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 일대에 있는 한 사설 환전소의 모습. 1달러당 148~149엔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박소정 기자

일은이 보유한 자산 규모가 이미 과도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BOJ는 장기 금리를 인위적인 수준으로 조정하기 위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국채 보유량이 50%(3월 말 기준 576조엔)를 넘어선 상황이다. 김 연구원은 “일은이 보유한 자산을 앞으로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예상된다”고 했다. 금융 완화 정책을 더 오래 고수할수록 향후 감당해야 할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취지다.

미 국채 금리의 초고속 급등도, 여러모로 일은에게 정책 수정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돌파한 것이 엔화 절하를 부추기는 데다가, YCC 정책 기준 상한선이 되는 일본 국채 금리도 치솟고 있다. YCC는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 목표치를 정해 놓고 일정 상한선을 넘어서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해 금리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통제하는 정책이다. 처음에는 그 상한선이 0.5%였는데, 정책이 수정돼 이제는 1%까지 용인되고 있다. 그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가 지난 23일 장중 0.855%까지 올라 10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김 연구원은 “언젠가 끝내야 할 통화 정책”이라며 “이제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종료 타이밍 싸움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13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 기자 회견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 ‘마이너스 금리’ 해제? 51% “내년 상반기”, 31% “연내”

시장에서도 일은의 금융 완화 정책의 ‘정상화’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일은의 통화 정책 정상화의 순서는 YCC 해제→마이너스 금리 정상화→오버슈트 커미트먼트(Overshoot Commitment·소비자물가 상승률 2% 상회 시까지 본원 통화 확대 공급)의 폐지다.

블룸버그통신 산하 전문 조사기관인 ‘마켓 라이브(MLIV) 펄스’가 주요국 통화 및 금융 전문가 3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51%가 “일은이 이례적으로 고수해 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내년 상반기 해제할 가능성이 크다”고 답변했다. 이들 중 23%는 12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8%는 오는 30~31일 예정된 10월 회의에서 당장 해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연내 금리 정상화를 점친 답변이 30%를 넘었다.

다만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국채 이자 비용이 막대하게 불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은 일은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일본 재무성은 기준금리를 1%p 올릴 경우 정부의 국채 원리금 상환 부담 비용은 내년 기준 7000억엔 정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재무성은 이 비용이 2025년에는 2조엔, 2026엔 3조6000억엔까지 증가할 것으로 봤다.

정부나 정치권의 시선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은 “국채 원리금 상환 비용을 대느라 경제 정책에 투입할 재원이 사라지면 일은에 대한 정부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제 관심은 오는 30~31일 열리는 일은의 10월 통화정책 회의에 주목된다. 시장은 이 회의에서 YCC 추가 완화나 폐지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완화 정책을 어떻게 운용해 나갈 것인지 향방을 암시하는 발언에도 이목이 쏠린다. 이번 회의에서 일은은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도 함께 발표한다. 닛케이는 “2024년 회계연도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기존 1.9%에서 2% 이상으로 높아져 안정적·지속적 물가 상승이 확인되면, YCC 정책 수정에 대한 견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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