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 이전 논란’ 속 홍범도 장군의 순국 80주기 추모식

이수민 2023. 10. 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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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충무관 앞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해 외부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육사는 흉상을 이전해야 하는 이유로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활동 이력'을 내세웠고, 논란이 불거진 지 약 1주일 만인 지난 8월 31일 흉상의 학교 밖 이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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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충무관 앞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해 외부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육사는 흉상을 이전해야 하는 이유로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활동 이력'을 내세웠고, 논란이 불거진 지 약 1주일 만인 지난 8월 31일 흉상의 학교 밖 이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과 역사학계 등에서는 여러 의견이 쏟아졌고, 이후 해군의 '홍범도함' 명칭 변경 문제와 더불어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이른바 '이념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홍범도 장군 80주기 추모식…박민식 "홍 장군 예우에 최선 다해와"

홍범도 장군의 묘역을 살펴보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주요 내빈들(사진 제공 : 국가보훈부)


이런 가운데, 오늘(25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선 '홍범도 장군 순국 제80주기 추모 및 청산리전투 전승 103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행사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우원식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독립유공자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과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박민식 장관은 추모사를 통해 "홍범도 장군은 비록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역만리에서 순국했지만, 장군이 걸어온 길은 수많은 애국청년의 길이 되었다"며 "그 기개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이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홍범도 장군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에게 호적을 만들어준 것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시작된 1962년, 홍범도 장군님을 서훈하고 예우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왔다. 앞으로 그 예우에는 티끌만큼의 소홀함도 없을 것"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 우원식 "홍 장군, 78년 만에 돌아온 고국 땅에서 편히 잠들지 못해"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사진 제공 : 국가보훈부)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가장 먼저 알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이사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추념사를 발표했습니다.

우 이사장은 "홍범도 장군이 78년 만에 돌아온 고국 땅에서 여전히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흉상 철거 논란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논란에 보훈부의 수장인 장관이 동조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대한민국 1호 군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있어야 할 곳은 우리 국군의 간성을 키워내는 육군사관학교"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우 이사장은 또, "(박 장관이) 홍범도 장군이 귀환 때 받은 서훈을 '이중 서훈'이라고 문제제기 했다"며 "홍 장군의 이중 서훈 논란이 이념적 접근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 등에서 나온 국방부 장관 및 육군 측의 발언을 보면,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방침은 확고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전 장소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이 논란은 두 달이 되도록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 주요 공적>

홍범도 장군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의병과 동포들을 중심으로 대한독립군을 창설했고, 국내에 잠입하여 혜산진·자성군 등에서 일본군을 급습하여 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1920년 일제의 독립군 탄압 계획 등에 맞서 독립군부대를 지휘, 일본군 대부대를 무찌른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1943년, 76세의 일기로 순국하기 전까지 연해주에서 후진 양성에 주력했으며, 정부는 장군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2021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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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waterm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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