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상정" vs "필리버스터·거부권"...무의미한 그들만의 대결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처리에 나서기로 하면서 국회에 긴장감이 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맞서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필리버스터 종결동의안을 건건이 제출해 무력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뜻대로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실제 공포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사회적 논란이 되거나, 여야 합의가 아닌 일방 처리로 통과된 법안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거대 야당이 입법 권력을 남용해 무의미한 정쟁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다음 달 9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개정안이 상정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방송3법은 KBS·MBC·EBS 이사회를 확대 개편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 영향력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야당은 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김도읍 의원)인 법제사법위원회가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처리를 미루고 있다며 각 상임위에서 단독으로 본회의 부의 요구안을 의결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가 '이유 없이'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해당 상임위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직회부를 요구할 수 있다. 이후 본회의에 부의된 이 법안들에 대해 야당은 여러 차례 처리를 요구했으나, 김 의장은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법안 상정을 미뤄왔다.
김 의장은 더 이상 법안 상정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지난 23일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 해당 법안들을 우선 본회의에 상정한 뒤 여야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찬반 토론을 거쳐 처리할 것을 제안하는 등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 없는 상정은 안 된다며 반대했다. 이와 관련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쪽(국민의힘)은 (법안 상정을) 원치 않지만, 국회법상 안 할 수가 없다"며 "지금까지 김 의장이 재량권을 넘어서면서까지 (미뤄온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각각의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종결동의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표결은 제출 후 24시간 이후에 가능하다. 이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하면 필리버스터가 종결되고, 의장은 해당 법안을 즉시 표결에 부쳐야 한다. 현재 재적의원이 298명인 만큼 필리버스터 종결에 필요한 의원 수는 최소 179명이다. 민주당(168석), 정의당(6석), 기본소득당·진보당(각 1석)에 구속된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6명)을 합하면 182석이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들에게 다음 달 국외 출장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등 4개 법안에 각각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경우,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 강제 종결'이 네 차례 반복되면서 최소 5일이 필요한 상황이다. 빨라야 다음달 13일에나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음달 노조법과 방송법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다고 해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국가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등 국익을 침해하는 법안, 이해당사자들 간에 갈등이 첨예한 법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된 법안 등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라고 밝혀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등에 대해서도 이런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들이 다시 국회로 되돌아오더라도 재의결될 가능성은 작다. 재의결을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국민의힘 의원이 100명 이상만 출석해 모두 반대표를 던지면 부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남은 변수는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선고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에 대해 법사위의 심사권을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26일 두 법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해당 법안들의 본회의 직회부는 무효가 된다. 이 경우 민주당은 절차적 문제점을 보완해 재상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말부터 본격화될 총선 정국을 고려하면 사실상 21대 국회 임기 내 재상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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