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숨은 부채’가 1825조원에 달해 1인당 8200만원을 빚지고 있다 [팩트체크]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3. 10. 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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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기자>[매경DB]
최근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국회 연금개혁 토론회에서 올해 기준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가 1825조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의 80.1%에 이를 것으로 밝혔습니다. ‘숨은 부채’를 감안하면 국민연금 재정상황이 보이는 것보다 암울해 즉각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관련 올해 국민연금 가입자수(약 2225만명)로 이 ‘숨은 부채’를 나누면 가입자 1인당 82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매일경제는 미적립부채가 무엇인지, 미적립부채를 통상적인 의미의 ‘부채’에 포함해야 하는지 여부를 따져봤습니다.

미적립부채는 특정 시점에서 일정 기간동안 연금기금이 지급하기로 약속한 금액인 ‘연금 충당부채’에서 적립기금을 뺀 값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연금 수급자가 평균수명까지 살아있는 경우 받는 돈과 현재는 연금을 납부하지만 향후 수급하게 될 가입자들이 받는 돈을 모두 더한 금액을 산출하고, 여기서 그간 쌓아둔 보험료를 빼는 것입니다. 계산 기간은 보통 70년 이상입니다.

즉 주기로 약속한 돈(충당부채)보다 가지고 있는 돈(적립기금)이 부족한만큼 당장은 갚을 필요가 없지만 향후 기금이 고갈되면 후대가 메꿔야하는 부채라는 뜻입니다.

현재 한국 공적연금 중 충당부채를 계산해 공개중인 기금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입니다. 2022회계연도 부채 결산 결과 연금충당부채는 1181조3000억원으로 전체 국가부채(2326조200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국민연금은 공식적으로 충당부채 공개와 산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재정 상황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위해서 이를 산출해 공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적연금별 국가지급 보장 명시 여부 <출처=국민연금법·군인연금법·공무원연금법>
그러나 국민연금공단과 정부의 입장은 다릅니다. 우선 ‘미적립부채’를 일반적인 국가부채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기획재정부는 공무원과 군인은 국가가 직접 고용해 근로관계를 맺었고, 이들의 연금은 퇴직연금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고용주인 정부가 공무원, 군인에 대한 퇴직연금 지급 의무가 법적으로 규정돼 향후 갚아야할 국가부채에 포함되는 것이 맞다는 의견입니다.

반면 국민연금은 국민 일반이 가입한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입니다. 정부가 고용주로서의 역할을 하지도 않고, 지급보장 의무 역시 지고 있지 않은만큼 국민연금의 충당부채를 국가부채에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국민연금 제5차 재정계산위원을 지냈던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는 금액이 확정되지도 않은데다 향후 제도 개선에 의해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며 “정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는 있지만 관련 법이 개선되지 않은만큼 부채라고 보기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관련 법을 따져보면 이같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인연금법과 공무원연금법엔 기해당 연금기금이 부족하면 국가가 부담하도록 명시했지만, 국민연금법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이란 표현만 들어갔습니다.

미적립부채의 규모 추산 방식과 결과도 정확하지 않다는 점도 있습니다. 한정림 국민연금연구원 재정추계분석실장은 “미적립부채를 계산하는데 쓰이는 기초 데이터나 할인율 등 계산방식 등에 대한 합의된 규정이 없다”며 “1825조원이란 수치가 도출되는데 쓰인 데이터 역시 과거 자료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기재부는 “미적립부채의 구체적인 산출방식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다”며 “미적립부채 도입 여부는 명확한 산출기준을 우선 정립한 뒤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미적립부채에 대한 규모 추정치도 제각각입니다. 작년 7월 신승희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국민연금 부채 산출방법 연구’ 보고서를 통해 작년 기준 미적립부채가 1735조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2016년 기준 558조원으로 추산했고, 보건사회연구원은 약 1500조원이란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매일경제는 전 교수의 분석결과와 주장에 대해 ‘절반의 사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6년간 개혁에 실패하며 점차 악화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재정상황을 감안하면 전 교수의 문제제기는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미적립부채의 성격에 대한 규정과 산출 방식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 그대로가 사실에 부합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팩트체크 과정에서 취재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적립부채가 국민연금의 재정상황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부르는 용도로 활용되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이준행 교수는 “국민연금 제도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미적립부채 수치가 공포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승희 국민연금연구원 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적립부채 산출시 결과해석에 있어 의미 있는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충분한 정보 제공 및 상세한 설명이 전제돼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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