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신하균을 악과 손잡게 했나('악인전기')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기게 해줄게요. 내일 재판. 당신 밟혔잖아. 문 로펌한테 두 번이나 밟혔는데 세 번은 좀 그렇지 않나?" 서도영(김영광)은 그런 말로 한동수(신하균)를 도발한다. 한동수는 문 로펌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다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 변호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의뢰인에게 부족한 합의금을 빌려줬는데, 의뢰인이 갚지 않고 도주하자 끝내 찾아가 받아낸 것으로 변호사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징계를 받은 것. 이해할 수 없는 징계였지만 그 뒤에는 한동수가 일했던 문 로펌의 문상국(송영창) 대표가 있었다. 그가 바로 징계위원장이었던 거였다.
하지만 문 로펌 문상국과 한동수의 악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동수의 아내가 마트 지점장에게 당한 성추행 사건의 소송에 문 로펌 문해준(최병모) 변호사와 재판으로 붙게 된 것. 이번에도 한동수의 패소는 거의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문 로펌의 막강한 힘 앞에, 매일 같은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자잘한 변호를 해 입에 풀칠하는 한동수는 너무나 약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와 함께 불법 인터넷 도박사업을 하려는 조폭 서도영(김영광)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그 약점을 일부러 툭툭 건드리며 도발했다.
"아휴.. 질리지도 않나? 맨날 지는 거. 이기고 싶지 않아요? 한번쯤 세게 밟아주고 싶지 않냐구? 습관이네. 지는 것도 습관이거든. 지금까지 살면서 당한 모멸감, 가슴 속 깊이 박힌 열등감, 이거 한 방에 날려 준다니까?" 마치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소토펠리스의 목소리처럼 서도영의 말은 한동수를 흔들리게 만든다. 하지만 끝내 자신은 그런 식으로 이기고 싶지 않다며 제안을 거절하려 했던 한동수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 문 로펌 변호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고는 마음을 바꾼다. 문 로펌이 너무나 승소를 자신해 어쏘들까지 참관하게 했다는 이야기에 그는 서도영에게 전화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ENA 일월드라마 <악인전기>가 흥미로운 건 평범한 서민 변호사 한동수가 어쩌다 서도영 같은 살벌한 조폭과 연루되면서 서서히 악과 손을 잡게 되고 나아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어서다. 처음 시작은 한동수의 이복동생이자 사건 브로커인 한범재(신재하)의 연결로 교도소에 수감된 서도영의 의뢰를 맡게 되면서였다. 아내를 감시해 달라는 의뢰였지만 알고 보니 조직의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그 증거영상을 건넨 게 그 시작이었다.
어쩌다 서도영이 그의 아내와 배신자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에게 발각된 한동수와 한범재 역시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됐을 때, 한동수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공범'을 자청한다. 시체 처리를 자신들이 함으로써 공범이 되어 서도영을 신고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려 한 것. 공포가 불러온 이 선택은 그러나 한동수를 서도영이라는 악에 조금씩 물들게 만들어 버린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서도영이 하는 불법 도박장을 신고해 그를 영원히 감옥에 가둬두려 했지만 또 일을 틀어져 한범재가 손이 잘릴 위기에 처하자 한동수는 또다시 그걸 모면하기 위해 서도영에게 사업제안을 한다. 무인도 같은 곳에서 하는 불법도박장보다 더 쉽게 전 세계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인터넷 도박을 제안한 것. 이처럼 죽을 수도 있는 공포 앞에서 한동수는 이를 모면하기 위해 조금씩 서도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서도영은 한동수의 열등감과 모멸감을 도발함으로써 끝내 선을 넘게 만든다.
어떻게 평범한 서민이 악과 손을 잡게 될까. 그것도 법을 수호하는 변호사가 범법자와 손을 잡는 <악인전기>의 이야기는 그 설정과 과정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건드린다. 서민을 지켜줘야 할 법이 정반대로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의 도구로 전락한 사회. 너무나 평범하고 건실하게 살아온 한동수가 점점 악과 손잡고 물들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한 편으로는 통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결국 <악인전기>의 묘미는 이 한동수라는 인물의 변화 과정에서 나온다.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변화하는가가 시청자들에게 때론 통쾌함을 때론 안타까움을 또 위기 상황에서의 긴장감과 이를 극복하려는 절박함 같은 것들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맡은 신하균은 그래서 이번에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보인다. 얼굴의 미세한 근육까지 그 감정을 표현해내는 신하균의 연기를 통해 이 변화해가는 인물의 감정 깊이 몰입하는 즐거움. 그 모험 속으로 신하균은 시청자들을 인도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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