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서사의 위험…시민들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한겨레 2023. 10. 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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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2021년 1월6일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면서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의사당을 점검한 트럼프 지지자들. AP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처 | 언어학자

오랜만에 영화 ‘라쇼몽’을 보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품이다. 시대적 감수성이 달라져 보는 사람이 줄었겠지만 여전히 영화 역사상 가장 잘 만든 영화 중 한편으로 꼽힌다. 12세기 교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네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사무라이 한명이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네사람 모두 자신들이 꾸미고 싶은 대로 서사를 만들어 사실과 다른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장면은 비일비재하다. 사실적인 근거 없이 말하고 싶은 대로 서사를 만들어 믿어달라고 하는 일이 워낙 많다. 대부분 갈등과 분쟁도 여기에서 비롯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서사’다. 한국어 사전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음”이라고 되어 있다. 한영사전에서는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하는데, 이는 ‘이야기’로도 번역이 가능하니 서사는 반드시 사실을 적는다기보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 또는 현상의 줄거리를 말이나 글로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서사란 곧 사람이 만드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처럼 완벽할 수 없다. 즉, 완벽한 서사란 존재하기 어렵다.

완벽한 서사가 존재하기 어려우니 우리 앞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말과 글 역시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사가 너무 다르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는 건 갈등이고 갈등이 불러오는 건 격앙된 감정과 싸움이다. 이기려면 자신의 서사를 믿어주는 사람을 최대한 확보하고 동원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하기 전인 2015년 자신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하러 온 작가에게 자신의 뉴욕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이 진짜 르누아르 작품이라고 했다. 시카고 출신이었던 작가가 시카고미술관에 진품이 걸려 있다며 벽에 걸린 그림은 진짜가 아니라고 했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 가짜라고 주장했다. 많은 정치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서사를 만들어내곤 하지만 트럼프처럼 완전히 거짓으로 일관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그가 만들어낸 서사는 이제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분명히 패배했으며 근소한 차이도 아니었지만 트럼프는 결과에 승복하는 대신 거짓 서사를 통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고, 실패한 뒤에도 오늘날까지 그 서사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트럼프만이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국면에서 많은 정치가는 물론 언론 역시 자신들이 지지하는 쪽에 유리한 서사를 만들어 밀어붙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지지하는 쪽의 단점은 덮인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원인과 해결책을 전망하는 목소리에도 어김없이 서사가 난무한다. 지지하는 쪽을 유리하게 하려다 보니 상대는 갈수록 악마가 된다. 미디어는 물론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감정을 부추기고 있어 상황은 악화일로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인류가 끔찍한 전쟁으로 멸망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할 지경이다.

이런 거짓 서사의 난무를 막을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SNS는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통한 맞춤형 서사는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매체와 기술을 관리하려 노력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보다는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서로 다른 서사들 사이에 겹치는 회색지대를 찾아 거기에서 사실에 근거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사실에 근거한 서사와 거짓 서사를 구별할 줄 아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남은 방법은 그것뿐이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사회지도층을 분발케 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거짓 서사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보자. 둘러싼 무수히 많은 서사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가. 그것을 제대로 구별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희망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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