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거미줄' 땅굴서 풀려난 80대 인질 "지옥을 경험했다"(상보)
인질과 납치범 동일 대우…위생에 주의 기울여
(서울=뉴스1) 권진영 권영미 기자 = 납치된 지 17일 만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로부터 풀려난 85세 이스라엘인 인질이 기자회견에서 "지옥을 경험했다"며 자신이 억류됐던 하마스 지하 터널에 관해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석방된 요체브 리프쉬츠는 인질로서는 처음으로 가자지구 내 지하 수비대에 억류됐던 경험담을 공개했다.
피곤한 기색으로 휠체어를 타고 딸과 함께 언론 앞에 선 리프쉬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며 "많은 이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구타하고 일부는 납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납치범은 나이 구분 없이 젊은이든 노인이든 습격하고 데려갔다. 리프쉬츠는 니르 오즈 주변 들판을 오토바이에 실려 끌려가는 동안 갈비뼈를 맞아 숨쉬기가 힘들었으며 차고 있던 시계와 장신구도 빼앗겼다고 했다.
리프쉬츠는 하마스의 지하 터널을 "거대한 거미줄"에 비유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땅 아래 거대한 지하 터널과 방을 만들어 무기·전투 대원, 인질 등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군 전문가들은 NYT에 하마스의 미로 같은 지하 통로가 이스라엘의 지상 작전 및 인질 구출 시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논평했다.
그는 터널에 도착한 후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방이 있다고 설명했으며 "우리는 지하로 수 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했다. 25명이 모인 큰 지하 방에 끌려갔으며 니르 오즈 출신 5명은 따로 분리됐다고 설명했다.
인질의 처우에 대해서는 "경비원과 위생병의 철저한 보호를 받았다"고 했다. CNN에 따르면 그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쿠란을 믿는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터널 안에서 우리가 자신들과 같은 조건에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그렇게 대접받았다고 전했다.
리프쉬츠는 2~3일에 한 번씩 의사가 찾아와 약과 치료를 받았는지 확인했다며 "의사는 우리에게 약을 가져오는 책임을 맡았다. 똑같은 약이 없으면 그에 상응하는 약을 가져왔다"고 했다.
또 납치범들이 "약과 샴푸, 여성 위생용품 등을 제공하는 등 인질의 건강과 위생 측면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들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먹는 음식도 경비를 서는 대원들과 똑같았다. 인질들은 하루에 한 끼만, 피타 빵(중동 지방에서 먹는 둥글납작한 빵)· 치즈 두 종류·오이 등을 제공받았다.
리프쉬츠는 지난 몇 주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위생병·경비병 등이 잘 조직되어 작전을 수행했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를 부드럽게 대했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 줬다"고도 말했다.
하마스가 촬영해 공개한 리프쉬츠의 석방 영상에는 그가 한 하마스 대원의 손을 잡고 거듭 '샬롬(평화)'이라며 작별 인사를 전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리프쉬츠의 손자 다니엘은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당분간 병원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건강해 보이지만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리프쉬츠는 자신이 인도적 대우를 받았다면서도 일련의 시련이 "매우 힘들었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1400명 이상이 숨지고 최소 222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이토록 많은 이스라엘인이 한꺼번에 인질로 잡힌 것은 처음이다.
이 중 23일 리프쉬츠와 그의 이웃인 누리트 쿠퍼(79)가 석방됐으며 그들의 남편을 포함한 200명 이상의 사람들은 여전히 억류돼 있다.
리프쉬츠는 가자 국경 인근 니르 오즈 키부츠에서 평화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남편 오데드 역시 평화운동가 겸 이스라엘 언론인이다. CBS는 부부가 부상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역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역 단체와 협력했다고 전했다.
하마스는 "보안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임시 억류 중인 외국 국적자의 석방을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NYT는 "하마스가 리프쉬츠를 석방해 적십자사에 인계하는 책임을 맡았지만 이들이 직접 그를 납치 및 억류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리프쉬츠는 이날 회견에서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Shin Bet)가 가자지구 인근 마을에 나타난 경고 신호를 무시했다고 말하며 이스라엘군을 비난했다. 하마스 대원들이 키부츠 주위의 전기 울타리를 쉽게 부수고 들어왔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하마스가 공격하기 몇 주 전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가자 국경 울타리 근처에서 폭탄 풍선이 날아와 이스라엘 남부에 화재를 냈다며 이스라엘군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지난 12일 "국가와 시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이스라엘군은 지난 7일 가자지구 주변 지역에서 시작된 공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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