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도무지 반갑지 않은 빈대의 귀환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3. 10. 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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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계명대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서 완전히 박멸했다고 믿었던 빈대가 다시 돌아왔다. 40년 만의 일이다. 대구의 대학교 기숙사에서 시작된 빈대의 출몰 소식이 곧바로 인천의 찜질방과 부천의 고시원으로 이어졌다. 

대구의 기숙사에는 영국 국적의 학생이 머물렀고 인천의 찜질방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빈대가 여행객과 함께 해외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빈대 청정국’의 명성(?)을 아쉬워하는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주장일 뿐이다. 어쨌든 빈대의 귀환도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에 시작되는 반갑지 않은 ‘뉴노멀’인 셈이다.

인천 사우나에서 발견된 빈대. 연합뉴스 제공

● 가난과 궁핍의 상징

그동안 빈대 출몰 소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2006년 무렵부터 빈대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간간이 보건소에 접수되었다고 한다. 특히 외국인 학생이 머무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빈대가 자주 발견되었다. 다행히 빈대가 다른 곳으로 퍼진 경우는 없었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른 모양이다. 유럽과 미국의 사정이 심상치 않다. ‘공중보건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프랑스는 정부 차원에서 고강도 빈대 퇴치 정책을 선포했다.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에 있는 중학교는 빈대 때문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는 소식도 있다. 

영국과 미국의 사정도 심각하다. 특히 호텔과 대학교 기숙사가 말썽이다. 심지어 지하철의 좌석 틈새에서 빈대가 기어다니는 동영상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으로 해외여행이 부쩍 늘어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고 가구의 유통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빈대는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등장한 셈이다. 박쥐를 비롯한 포유류‧조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빈대는 현재 세계적으로 75종(種)이 서식하고 있다.

빈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성충의 크기가 5밀리미터 정도의 노린재목에 속하는 작고 납작한 모양의 곤충이다. 향신료로 사용하는 고수와 비슷한 냄새를 풍겨서 ‘취충’(臭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빈대는 매트리스·가방·가구의 작은 틈새에 숨어서 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활동을 시작하는 몹시 성가신 해충이다. 기온이 높아지면 빈대가 더 많아진다. 최근 저개발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빈대가 극성을 부리는 것이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빈대는 기후가 온화한 곳이라면 어디에나 서식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주로 생활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괴롭혔다. 납작한 코를 일컫는 ‘빈대코’는 빈대의 납작한 모양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 속담에 빈대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나치게 염치가 없는 사람을 나무라는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은 그런 사실을 반어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빈대(bed bug)는 이(louse)·벼룩(flea)과 함께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다. 청결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창궐하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티푸스를 옮겨주는 이나 흑사병(페스트)을 퍼트리는 벼룩과 달리 빈대는 고약한 감염병을 매개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에게 물리는 일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성가신 일이다. 피부 발진과 가려움도 훨씬 더 심하다.

6.25 전쟁 당시 어린이들에게 DDT를 뿌려주고 있는 모습. 위키미디어 제공

● 초가삼간을 태워버릴 수는 없다

가구나 벽의 작은 틈새에 숨어서 사는 작은 빈대를 퇴치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두운 곳에서만 활동하는 빈대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빈대가 창궐하는 집은 태워버리는 수밖에 다른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은 바로 그런 현실을 뜻하는 것이었다. 결국 빈대에게 화학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살충제’(pesticide)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효율적인 살충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빈대의 퇴치는 비현실적인 꿈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농약‧살충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화과의 제충국이 가장 널리 쓰이는 천연 농약이었다. 그러나 천연 농약은 효과도 제한적이었고 생산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뛰어난 효능을 가진 살충제를 비롯한 현대적 합성 농약은 20세기 세계대전의 산물이다. 합성 농약을 화학공장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 세계 인구를 5배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준 현대의 화학산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역설적인 일이었다. 전투 현장의 해충 제거에 유용했던 농약은 핵심 전쟁물자였다. 

정치인들도 엉뚱한 목적으로 농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농약으로 해충이 아니라 적군과 유태인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서 개발한 살충제가 느닷없이 적군을 공격하고 유태인을 학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화학무기’로 변신했다. 

농약을 개발하던 화학자들이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 개발에 동원되기도 했다.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질소 고정법을 개발한 독일의 프리츠 하버가 그랬다. 프랑스와의 전선에서 처음 사용한 염소 독가스를 개발한 것이 바로 하버였다.

빈대 퇴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도 전쟁을 위해 개발된 유기염소계 살충제다. DDT가 곤충의 신경전달 세포를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스위스의 화학자 폴 뮐러였다. 

DDT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말라리아와 발진열(발진티푸스)을 전파하는 이는 물론 빈대와 벼룩의 퇴치에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했다. 뮐러는 그런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DT는 1945년부터 농약으로 공급되었고 1955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전 세계에 DDT를 대량 살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보건의료 체계가 정비된 지역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우리도 1970년대까지 빈대‧이‧벼룩을 퇴치를 위해 많은 양의 DDT를 사용했다. 심지어 이(louse)를 퇴치한다는 핑계로 DDT 분말을 직접 몸에 뿌리기도 했다. DDT가 우리를 ‘빈대 청정국’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나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DDT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DDT에 내성을 가진 모기와 빈대‧이‧벼룩이 등장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되면서 DDT의 환경 독성에 대한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다. 실제로 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1972년 스톡홀름 회의에서 환경 잔류 가능성이 큰 DDT를 비롯한 유기농약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다. 우리도 1971년부터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1979년부터는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DDT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빈대‧이‧벼룩의 퇴치가 어려워졌다. 다행히 열에 약한 특성을 가진 빈대의 경우에는 섭씨 40도 이상의 수증기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박멸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 독성의 우려가 없으면서 DDT만큼 효과적인 살충제는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천연 살충제는 제충국에 들어있는 피레스로이드 성분을 이용한 빈대 퇴치제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선진국에서 사라졌던 빈대와 이가 다시 극성을 부리는 것도 마땅한 살충제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침묵의 봄'을 통해 농약의 부작용을 명쾌하게 지적한 레이첼 카슨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다를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던 레이첼 카슨의 지적을 맹목적인 농약 거부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카슨이 인류의 기근과 질병을 가볍게 여겼다고 볼 이유도  없다. 

카슨이 거부했던 것은 농약 자체가 아니라 농약을 핑계로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외면해버린 비윤리적인 농약 제조사였다. 물론 농약 제조사와의 야합으로 권력과 부를 누리던 정치인들의 폐해도 심각했다. 

비윤리적인 기업을 위해서 자신들의 재능을 함부로 써버린 화학자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카슨의 주장은 더욱 안전한 농약을 안전하게 생산해야 하고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환경을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건강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해주는 기술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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