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포괄임금제가 아닌 '근로시간 카운트'
MZ세대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쿠팡플레이에서 방영되는 SNL(Saturday Night Live) KOREA의 한 콩트에 20세기 말을 주름잡던 X세대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은 당시 작성한 트랜드 리포트에서 엑스세대를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라고 소개하고 있다. 콩트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한다. 그런데 진행자가 30년 후에는 추석연휴가 6일에 이르게 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지금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있는데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하면서 “그러면 일은 누가하고 나라는 누가 지키냐”고 반문한다. 아마도 지금 회사에 계시는 부장님들이나 상무님들 다수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 시절 학생들은 주 6일 등교를 하였고, 어른들은 매주 토요일에 출근했다. 그래도 토요일은 반나절만 버티면 되었고,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당시 필자도 다소 들뜬 마음으로 토요일 등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이 육중한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불토'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연도의 맨 앞자리가 ‘2’로 바뀌는 다소 낯선 시대가 도래하자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토요일도 쉬자는 여론이 다수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주 40시간제를 골자로 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04년 7월 공기업, 금융업, 보험업 및 1000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일하는 주 5일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었고, 2011년 전면 시행되었다. 2005년에는 교육현장에서도 월 1회 토요일에 등교하지 않게 되면서 이른바 '놀토'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고, 이후 '놀토'가 월 2회로 확대되더니 2012년부터 토요휴업제가 전면 시행되었다. '놀토'라는 단어는 휴업하는 토요일과 그렇지 않은 토요일을 구분하려고 사용한 단어인데, 토요휴업제의 전면 시행으로 구분 실익이 없어져 더 이상 사용할 일이 없어지게 되었고, '불토'는 '불금' 또는 더 최근에는 '불목'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약 10년에 걸쳐 주 40시간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었고, 교육현장도 그에 맞추어 토요일은 더 이상 등교하지 않는 날이 되었다. 그러나 주 5일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에도 장시간 근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특히 우리나라 주력 산업이 공장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제조업에서 나아가 연구개발 또는 창작을 기반으로 하는 IT, 게임,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업종에 따라서는 근로시간이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2018년 7월부터 근로시간 총량을 규제하는 주52시간제가 도입되었는데, 이는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에 더하여 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을 포함하는 1주일 동안의 총근로시간이 52시간이 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평일 연장근로시간 12시간과 휴일근로시간 16시간을 각각 셀 수 있었기 때문에 해석상 최대 68시간(40시간+12시간+16시간)까지 가능하던 것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효과가 있었다. 과거 국가별 연간 근로시간을 비교해 놓은 자료를 보면 다른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이 최소 수백 시간에서 많게는 천 시간 이상 길었던 통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최근 나오는 지표를 보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더라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처럼 근로시간은 거듭 축소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고, 그와 같은 변화의 방향을 다수가 동의하다 보니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관련 법령을 정비하기 위한 입법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가 나서서 민간의 근로시간을 주단위로 규제하고 준수 여부를 감독하여 처벌까지 가능케 한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고, 특히 융통성 없는 규제가 시장수요의 증감변동에 따른 경영을 어렵게 하므로,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총량을 세는 단위기간을 완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 어렵게 이룬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다시 과거로 돌아 가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앞으로 68시간을 일해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왜곡된 주장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세력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단위기간을 완화함으로써 합리적인 대안을 설계하자는 논의조차 어렵게 한다.
또한 장시간 노동의 주범으로 포괄임금제를 들면서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공짜노동'인데 표현대로라면 임금도 안주면서 일만 오래 시키는 최악의 제도이므로 금지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를 금지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사실 포괄임금제는 사전에 정해 둔 일정한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을 실근로시간과 무관하게 고정적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실제 연장근로를 하지 않거나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사전에 정해 둔 시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이익이 된다. 즉, 근로자에게 언제나 손해만을 야기하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할 제도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막상 포괄임금제가 금지되면 포괄임금 명목으로 지급하던 임금을 더 이상 지급할 수 없게 되고, 연장근로가 발생하는 경우에 한하여 연장근로시간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게 된다. 이 때 별도의 임금보전수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실근로시간 감소에 따라 실질임금이 감소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고, 임금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연장근로를 하거나 근태 조작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더욱이 포괄임금으로 커버되는 범위까지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자유롭게 근로를 제공하고 수령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노사 모두에게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포괄임금제의 이 같은 특성은 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포괄임금제에 의한 임금 지급계약 또는 단체협약을 한 경우 그것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포함하지 않고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다는 등의 사정이 없음에도 포괄임금제 방식에 의해 지급하기로 약정한 정액의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산정한 법정수당에 미달하는 경우, 회사는 그 미달하는 법정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고, 최근에는 포괄임금약정 자체가 무효에 해당하더라도 회사가 포괄임금약정에 따라 연장·야간·휴일수당 명목의 수당을 지급하였으므로, 원고들의 추가 근로를 포함한 실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수당을 지급할 때 기 지급된 수당은 공제하고 차액만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이처럼 포괄임금제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근로시간 축소는 규제방법 및 수단에 관한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장시간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입법을 통해서 달성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입법을 할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어떻게 셀 것인지에 대한 기준 및 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욱이 지금 포괄임금제를 악마처럼 규정하고 있는 측의 주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시간 근로가 방치되어 있고, 나아가 초과 근로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다는 것인데, 이는 근로시간을 세는 기준 및 수단만 마련되면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로 보인다. 아울러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고 한 번 만든 규제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생산성 혁신을 달성하여 2050년경 주 4일 근무를 하면서 지금을 돌아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홍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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