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車 대중화 이끌 플랜B 필요하다[문희수의 시론]

2023. 10. 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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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확산 둔화 속 값싼 중국차 질주
저가·중소형차 선호 판도 변화
기술경쟁 넘어 대중화 준비할 때
선진·개도국별 맞춤 전략 필요
중국식 배터리 못 만들 이유 없어
보조금 개편해 강소기업 키워야

전기차 시장이 심상치 않다. 확산에 제동이 걸리며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무엇보다 판매 증가세 둔화가 두드러진다. 글로벌 판매 증가율은 올 5월만 해도 55.5%(전년 동월 대비)에 달했지만, 6월 35%, 7월 25.5%로 급속히 꺾이고 있다. 특히, 국내 판매는 아예 내리막이다. 미국·중국은 그래도 지난 8월 각각 61%와 17% 증가했던 반면, 국내는 17% 감소로 후진했다. 9월은 더 부진했다. 유행을 선도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중심의 1차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 부담에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이 와중에 저가 중국차는 질주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글로벌 톱10 중 중국 기업이 BYD 등 4개사나 된다. 이들의 합산 점유율은 38%를 웃돈다. 가격 비중이 큰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기술 향상으로 짧은 주행거리 등 약점을 거의 극복해 가격과 성능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영국·스웨덴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등 정책 변화도 부정적이다. 물론 중국 견제가 목표지만, 한국차에도 이로울 게 없는 반전이다. 기존 내연기관차에서 정상을 누리다가, 전기차 전환이 늦어 뒤처질 위기에 놓인 일본 토요타·독일 폴크스바겐 등은 재정비할 시간을 번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고급화·대형화였던 키워드가 저가화·중소형화로 바뀌고 있다. 1라운드인 기술 경쟁에서 대중화라는 2라운드로 넘어가는 것이다. 예상 밖의 전환일 수 있지만, 소비자 선호가 그러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제2 도약을 위한 플랜B가 ‘발등의 불’인 이유다.

우선, 고급차 수요가 많은 선진국과 중저가 차를 많이 찾는 개발도상국으로 시장을 차별화해 맞춤 전략을 갖춰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세계 3위 부상에 일등공신인 고급차 전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기아차가 중소형 차종을 추가해 전기차 풀라인을 갖추고, 현대차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합작 생산공장을 세워 중동에 첫 거점을 만들어 새로운 성장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이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10년 전략을 업그레이드해 내년에 내놓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다. 전환기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결과는 뻔하다. 필요하다면 다 바꾸라는 것이 30년 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경영을 통해 남긴 교훈이다.

K-배터리 역시 분발해야 한다. 한국의 주력인 삼원계(NCM) 배터리만 고집하며 중국식 배터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현대차의 코나, 기아차의 니로·레이 같은 소형차가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해 저가화 추세를 따라가는 게 현실이다. 중국산이 1000만 원이나 싸니 벌어지는 일이다. 소비자들이 품질은 다소 떨어져도 가격 부담이 적은 배터리를 원한다면, 당연히 맞춰 가야 한다. 중국식 배터리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국내 소재·부품·장비 등 생태계가 점차 성장하고 있다. 중국산에 맥없이 밀렸던 전기 버스·전기 이륜차 등에선 강소기업이 속속 등장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부품·장비, 심지어 중국식 배터리까지 직접 생산해 국산화하려는 중소·벤처기업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소재·원료 등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리튬 등 일부는 해외에서 자체 조달하는 성공 사례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와 K-배터리 3사는 물론 포스코·고려아연 등 소재업체들도 가세해 성과를 내고 있다.

강소기업을 키우고 생태계가 강해지려면 정부부터 달라져야 한다. 오로지 보급 확대에 매달려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길을 막고 시장을 장악해 가는 중국산에까지 보조금을 퍼주는 문재인 전 정부 때의 국적 없는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굳이 중국 같은 특정국을 적시해 차별 논란을 자초할 것도 없다. 국내 생태계에 맞는 조건을 붙이면 그뿐이다. 환경부가 에너지 밀도와 재활용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보조금 차등화를 검토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대놓고 자국산 우대에 나서는 상황인 만큼 이런 정도의 개편이 문제가 될 리는 없다. 보조금 개편은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내 실정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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