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디렉터]100년 기업이 되고 싶다면, 가족헌장 제정을

김유정 신영증권 헤리티지솔루션부 변호사 2023. 10. 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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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신영증권 헤리티지솔루션부 변호사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은 스웨덴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2위 전자회사 엘렉트로룩스와 아스트라제네카, 민간 합작 항공사인 SAS 등 다양한 회사가 소속된 지주사 인베스터 AB(Investor AB)를 소유하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1856년 SEB(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이 설립된 이래 무려 160년간 5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하고 있다. 현재는 6대 가문 구성원 30여명이 발렌베리 그룹 내에서 근무하며 체계적인 후계 수업을 받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어떻게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가업을 승계했을까. 발렌베리 그룹의 창시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Andre Oscar Wallenberg)는 그룹 총수로 적합한 후계자의 요건을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 적합한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만 승계해야 한다. 둘째, 혼자 힘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셋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넷째, 부모 도움 없이 세계 금융중심지에 진출해 실무경험과 금융 흐름을 익혀야 한다. 다섯째, 후계자 평가 기간은 10년 이상으로 하고 견제와 균형을 위해 복수 구성원을 후보로 삼는다.

엄격한 요건을 충족한 최종 후계 후보자 2명은 차례로 그룹 계열사의 경영진으로 참여해 경영 수업을 받는다. 최종적으로 그룹 지주사인 인베스터 AB의 CEO(최고경영자)와 SEB의 CEO 직무를 교대로 수행한다. 이처럼 발렌베리 그룹의 총수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선임된다.

현재 경영을 맡은 마르쿠스 발렌베리(Marcus Wallenberg)는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졸업 후 뉴욕 씨티은행 본사, 독일 도이치뱅크, 영국 SG워버그, 홍콩 씨티그룹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 외에도 스웨덴 해군사관학교 졸업하고 해군장교로 복무했다. 함께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그의 사촌 야콥 발렌베리(Jacob Wallenberg)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의 와튼스쿨 졸업 후 스웨덴 왕립 해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한 해군 예비장교다. 후계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지위를 부여해 온 덕분에 발렌베리 가문은 160년 동안 세계대전, 경제위기 등에도 견고하게 자리매김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현실은 열악하다. 많은 기업이 승계계획을 미리 세우지 못해 폐업하기에 이른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승계 불발에 따른 폐업 등에 예상되는 자산총액 손실은 238조239억원, 매출액 손실은 137조9652억원, 부가가치액 손실은 6376억원에 달한다.

발렌베리 가문처럼 오랜 기간 기업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싶다면 후계자에 대한 엄격한 요건을 정하고, 장기간에 걸쳐 이를 검증해야 한다. 승계요건을 가훈 정도로 단순하게 정하는 것이 아닌 가족헌장(Family Constitution)처럼 구체적인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가족헌장에는 보통 가족협의체 혹은 가족자문위원회의 구성방법, 창업자 사망 시 지분승계방법, 후계자 요건, 가문의 정신, 가문구성원 외 제 3자를 상대로 한 주식양도제한 등과 같은 내용이 담긴다.

하지만 가족헌장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업 승계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가족헌장 준수를 위해 기업 주식신탁을 이용할 수 있다. 주식을 신탁하면 의결권(원본수익권)과 경제적 지분(수익수익권)을 분리할 수 있다. 하나의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지시권자와 배당금 수령자를 분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른 자녀들에게도 주식을 분배해 배당금 수령 등 수익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되 의결권 행사는 가족협의체나 가족자문위원회를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 가족협의체와 가족자문위원회는 가족헌장에 따라 가문의 정신과 주주인 가문 구성원의 이익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에 개개인이 가족헌장에 반하는 의결권 행사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진다.이렇듯 기업주식을 신탁하면 가족헌장 내용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할 수 있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건실한 기업이 다음 세대로 안정적으로 승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능력 있는 사람에게 경영권이 승계될 수 있도록 엄격한 요건을 정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가업 승계를 일찍부터 준비하는 관행이 정착돼 장수기업의 원활한 승계가 이뤄지길 바란다.

김유정 신영증권 헤리티지솔루션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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