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 당 구원투수로 등장 후 대부분 ‘용두사미’… 전권 틀어쥐었던 홍준표·김상곤은 성공사례[Who, What, Why]
최재형, 이준석 사퇴로 동력상실… 류석춘은 ‘살생부 논란’
홍준표, 당원 아닌 국민선거인단에 권한… 지방선거 승리
김은경호는 ‘이재명 친위대’ 불려… 출발부터 논란의 연속
김상곤, 11차례 혁신안 내고 기득권 물갈이… 총선서 돌풍
여야는 정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새로운 혁신기구를 통해 반전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 시도가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다. 혁신기구 수장과 기존 지도부의 인적 관계가 가까울수록 혁신기구는 ‘꼭두각시 친위대’라는 비판을 받았고, 쇄신을 위한 ‘환부 수술’은 필연적으로 기득권 의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푸른 눈의 한국인’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이끄는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는 국민에게 감동을 안기는 혁신을 통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역대 여야 정당의 혁신기구 흥망사를 정리했다.
◇보수정당 ‘홍준표 혁신위’가 드문 성공=보수 정당은 혁신위를 여러 차례 출범했으나 대부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활동한 ‘최재형 혁신위’가 대표적이다. 애초 최재형 혁신위는 이 전 대표가 친윤(친윤석열)계와 대결 구도에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면서 출범했던 기구라 이 전 대표 축출 후 동력을 잃고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감사원장 출신의 최재형 의원이 이끈 혁신위는 △공천관리위원회 기능 일부 윤리위원회 이관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확대 △온라인 당원투표제 도입 △국회의원 정기평가제 도입 등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가장 첨예하고 민감한 공천 문제를 야당보다 먼저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게 최재형 혁신위의 최대 성과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에는 2017년 ‘류석춘 혁신위’가 있었다. 당시 보수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통해 한국당과 바른정당 둘로 쪼개져 있었다. 류석춘 혁신위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 출당 문제 등을 포함해 인적·조직·정책 전 분야에 걸쳐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류 위원장이 2016년 ‘철학 없는 국회의원’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새누리당(옛 한국당) 의원 25명을 문제 의원으로 지목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살생부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일베 독려’ ‘탄핵 부정 발언’ 등으로 논란을 양산하다 5개월여 만에 활동을 종료했다.
류석춘 혁신위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김용태 혁신위’는 ‘신보수주의’를 기치로 한국당 2기 혁신위를 이끌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김용태 혁신위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폐지 등을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발표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출범 2개월 만의 일이다.
2014년에는 ‘김문수 혁신위’가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여권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동갑내기 친구’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삼고초려 끝에 영입하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의욕적이었던 시작과 비교하면 혁신위 활동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의원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불체포특권 완화 등의 혁신안을 발표했는데, 현실정치에 반영되지 못했다.
혁신위 중 드물게 성공한 사례로는 2005년 ‘홍준표 혁신위’가 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반박(반박근혜)계이자, 비주류에 속하던 홍준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세우고 ‘전권’을 부여했다. 홍준표 혁신위는 책임당원에게 선거권에서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당원을 배제한 순수한 국민선거인단에 30%를 할당하는 안을 내놓았다. 전략공천 지역을 30%로 규정한 당헌을 삭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주류의 거센 반발이 있었으나, 당 지도부는 혁신안 대부분을 수용했다. 한나라당은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결국, 혁신위가 성공하려면 지도부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혁신을 위한 전권 부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도 조기퇴장 =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의 가장 최근 사례는 ‘김은경 혁신위원회’다. 문재인 정부 당시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지낸 김은경 위원장(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임명한 혁신위원들이 ‘친명(친이재명) 일색’으로 채워지면서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이재명 대표가 자리 보전을 위해 김 위원장을 앞세워 ‘친위대’를 띄운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김은경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 역시 당의 체질 개선은커녕 계파 내홍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자 혁신위는 ‘체포동의안 당론 가결’을 제안했으나 당 최고위원회는 ‘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당론으로 부결하지 않겠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이 대표의 약속이 무색하게 ‘1호 쇄신안’부터 당내에서 퇴짜를 맞았다. 김 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은 혁신위가 예상보다 빨리 활동을 종료하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혁신위는 지난 8월 10일 조기 퇴장을 선언하며 친명계가 줄기차게 주장한 ‘대의원제 무력화’를 마지막 혁신안으로 내놓았으나 비명계의 강력한 반발에 당 최고위와 의총에서 결론을 맺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 혁신기구 가운데 지금까지 모범 사례로 언급되는 것은 지난 2015년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이끈 혁신위다.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2015년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대표) 체제로 치른 4·29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비문(비문재인)계에선 지도부 사퇴론이 분출했다. 당은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부 사퇴 대신 쇄신 이미지와 리더십, 인지도 등 3박자를 두루 갖춘 김 전 교육감에게 혁신위를 맡겨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애초 혁신위원장엔 야권의 차기 잠룡으로 부상 중이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거론됐으나 문 전 대통령은 비문계 반발을 고려해 계파색이 희미한 김 전 교육감을 혁신기구 수장으로, 조 교수를 혁신위원으로 임명했다. 조기 퇴장한 ‘김은경 혁신위’와 달리 ‘김상곤 혁신위’는 146일 동안 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선출직 공직자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하위 20%에 해당하는 현역 의원을 공천 배제하기로 한 혁신안은 ‘기득권 물갈이’의 신호탄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상곤 혁신위’ 해체에 이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의 돌풍에도 불구하고 123석을 얻으며 1당으로 올라섰다. 민주당은 19대 대선 승리 뒤인 2017년 8월에도 당시 당 대표였던 ‘추미애표’ 혁신을 기치로 최재성 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당발전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회는 현역 의원 경선 의무화, 비례대표 상향식 공천 등의 혁신안을 발표했으나 의원들의 반대로 당내 의결 과정에서 대부분의 항목이 수정·제외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당대표 궐위·최고위 기능 상실땐 ‘비대위’ 전환…‘혁신위’는 당대표가 설치 가능
■ 비대위와 차이점
정당이 위기 상황일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혁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다. 두 위원회 모두 정당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당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하지만 위원회 출범 조건과 권한 등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당 당헌상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은 ‘당 대표의 궐위’와 ‘최고위원회의 기능 상실’일 때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을 선출직 최고위원 및 청년최고위원 중 4명 이상의 사퇴 등 궐위일 때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8월 의원총회에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 사퇴한 경우를 비대위 전환이 가능한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난상 토론 끝에 박수로 추인했다. 또한, 비대위원장의 사퇴 등 궐위가 발생한 경우에는 원내대표, 최다선 의원 순으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다만, 최다선 의원이 2명 이상이면 연장자순으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 과반’이 궐위될 때 비대위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대위가 구성되면 최고위는 해산되고,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의 권한을 대행한다.
그에 반해 혁신위는 당 대표가 최고위 의결을 통해 설치할 수 있다. 당 대표 권한을 대행하는 비대위원장과 달리, 혁신위원장의 권한은 전적으로 당 지도부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정해진다. 이 때문에 혁신위원장 중 당 대표와 맞먹는 권한을 갖게 될 경우 ‘전권 혁신위원장’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한편, 혁신위원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그래서 정치권에는 보수혁신위원장이 ‘무(無)보수혁신위원장’이란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해완·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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