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애인 개인예산제 체험 포기자 30% “지원 시간 부족”
장애인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장애인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사업에 참여했다가 포기한 이 10명 중 3명은 ‘활동지원 시간 부족’을 그 이유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활동지원 급여 일부를 떼어내 개인예산제로 활용하는 현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장애인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현황’(지난달 30일 기준)을 25일 보면,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사업 참여를 신청한 123명 가운데 34명(27.6%)은 참여를 포기했다. 이들이 밝힌 포기 이유는 ‘활동지원 시간 부족’이 10명(29.4%)으로 가장 많았고, ‘이용 서비스 없음’(8명), ‘본인부담금 납부 부담’(7명), 기타(9명) 등의 순이었다. 개인예산제 모의적용은 이동 보조 등을 지원하는 기존 활동지원 급여 일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예산제를 이용하면 기존 활동지원 급여가 줄어든다. 기존 활동지원 급여도 충분치 않아 이런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는데, 실제로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드는 데 부담을 느껴 참여하지 못한 사례들이 확인된 것이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개인의 건강 상태나 소득 등에 따라 정해진 복지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라 주어진 액수 안에서 개인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로, 올해는 모의적용을 하고 내년과 2025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시행된다. 올해 모의적용은 서울 마포구, 경기 김포시, 충남 예산군, 세종시 등 4개 지방자치단체에 사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두 가지 모델을 적용한다. ‘급여 유연화’ 모델은 기존에 지급하던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의 일부(10% 안쪽)를 떼어내 공공서비스(재활, 긴급돌봄 등)나 민간서비스(주택 개조, 주거환경 개선 등)에 쓸 수 있도록 한다. ‘필요 서비스 제공 인력 활용’ 모델은 기존 활동지원 급여의 20% 안에서 간호사·언어치료사·물리치료사·보행지도사 같은 인력의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개인예산제 모의적용에서 정해둔 복지서비스 단가가 낮아 실제 이용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복지부는 서울 마포구와 충남 예산군에서 급여 유연화 모델을, 세종시와 경기 김포시에서 필요 서비스 제공 인력 활용 모델을 각 지자체당 30명씩(모델당 60명, 전체 120명) 시행하려고 했으나, 필요 서비스 제공 인력 활용 모델을 선택한 이용자는 세종시의 4명뿐이었다. 사업 참가를 포기한 인원을 제외하고 현재 사업에 참여 중인 88명(1명은 사업계획 미수립) 중 나머지 84명은 급여 유연화 모델을 선택했다. 필요 서비스 제공 인력 활용 모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당 단가는 최대 3만1140원인데, 이 금액이 언어치료사 등의 실제 시급 단가보다 낮아 인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급여 유연화 모델에서도 복지서비스 이용이 어려워 건강기능식품 등 현물 구매로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급여 유연화 모델 이용 건수 173건 가운데 건강기능식품 구매가 46건(26.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재활서비스 30건(17.3%), 장애 관련 소모품 27건(15.6%), 주거환경 개선 19건(11.0%) 등이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급여 유연화 모델을 이용 중인 자폐성 장애인의 보호자 김아무개(52)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활서비스나 체육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싶었는데,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을 찾기 어렵거나 지원 항목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건강기능식품만 구매했다”고 말했다.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농어촌 지역은 현물 구매에 쏠리는 경향이 더 강했다. 서울 마포구와 충남 예산군에서 정산이 이뤄진 이용 건수 11건을 비교해보면, 서울 마포구는 장애 관련 소모품(13만8310원)과 건강기능식품(86만2740원)에 사용된 금액이 전체 금액(243만9450원)의 41% 수준이었는데 충남 예산군은 장애 관련 소모품(189만4000원)과 건강기능식품(85만8920원)에 사용된 금액이 전체 금액(369만5920원)의 74.5%를 차지했다.
최혜영 의원은 “가뜩이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부족해 대다수 장애인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급여를 쪼개가며 개인예산제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내년 시범사업과 이후 본 사업에서는 개인예산제 목적의 예산을 대폭 증액해 ‘장애인 선택권 확대’라는 본연의 취지에 맞게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관과 서비스 종류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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