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다치게 하면서 우승하고 싶지 않았다" 벌랜더 아낀 74세 노감독, 이렇게 은퇴하나
[OSEN=이상학 기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2연패가 좌절됐다. 메이저리그 현역 최고령 사령탑이자 최고 덕장으로 존경을 받는 더스티 베이커(74) 휴스턴 감독도 은퇴를 암시했다. 마지막까지 선수의 몸을 아낀 노감독은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베이커 감독이 이끈 휴스턴은 지난 24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최종 7차전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에 4-11로 패했다. 원정 3경기를 모두 이겼지만 홈에서 치른 4경기를 전패했고, 시리즈 전적 3승4패로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지난해 휴스턴에서 생애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한을 푼 베이커 감독은 1년 재계약을 맺고 돌아왔다. 21세기 최초 월드시리즈 2연패를 목표로 했지만 텍사스의 돌풍에 가로막혔다. 베이커 감독과 휴스턴의 1년 재계약이 이날 패배로 끝나면서 은퇴설이 흘러나왔다. 미국 ‘디애슬레틱’에선 이날 경기 후 베이커 감독이 주변에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베이커 감독은 “선수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노력과 프로다운 모습에 감사하다는 말도 했다”며 “나의 미래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선수들에게서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빼앗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한 일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이후 나의 미래를 생각해볼 것이다”고 말했다.
말을 아꼈지만 마음은 은퇴에 기운 듯하다. 그는 “손주가 둘이나 있는데 또 다른 반지를 찾기 위해 아이들을 속인 셈이다. 1살 된 사냥개도 두 마리 있는데 2월11일 이후로 내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개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여기 누가 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운 사람이 있나? 난 그 직업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이왕이면 우승으로 마무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야구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7차전에서 상대팀 텍사스는 5차전에서 선발로 82구를 던진 조던 몽고메리를 3일 만에 불펜으로 깜짝 투입했다. 3회 나온 몽고메리가 2⅓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흐름이 텍사스로 넘어갔다. 반면 휴스턴은 5차전 선발 저스틴 벌랜더를 쓰지 않았다. 벌랜더도 3일 전 몽고메리와 같은 82구를 던진 상태였지만 이날 등판은커녕 불펜 대기도 하지 않았다.
경기 전 벌랜더의 불펜 대기와 관련해 베이커 감독은 “모르겠다. 가능한 안 나왔으면 좋겠다. 토미 존 수술을 한 투수이고, 내년 커리어를 생각할 때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싶다. 승리는 중요하지만 건강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며 웬만해선 벌랜더 불펜 카드를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기 후에도 베이커 감독은 “경기 중 벌랜더와 등판 가능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벌랜더보다 훨씬 젊고, 팔에도 문제가 없다.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싶지만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기고 싶진 않았다”며 눈앞의 경기, 나아가 우승보다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40세 불혹의 노장 벌랜더는 2020년 9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2021년을 통째로 쉬었다. 올해가 복귀 두 번째 시즌으로 관리가 필요하다. 지난겨울 뉴욕 메츠와 2년 8600만 달러에 FA 계약한 벌랜더는 시즌 전 대원근 염증으로 개막 로테이션 합류가 불발돼 5월부터 시즌을 시작했다. 8월초 트레이드 마감일을 앞두고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온 벌랜더는 내년까지 계약이 남아있고,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게 베이커 감독 판단이었다.
‘MLB.com’에 따르면 벌랜더를 비롯해 휴스턴 선수들도 베이커 감독에게 존경심을 나타냈다. 벌랜더는 “베이커 감독은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경기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선수들을 많이 아낀다. 한 인간으로서 베이커 감독을 알게 된 것에 정말 감사하다. 지난 몇 년간 좋은 대화를 나눴고, 그와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다.
2년차 유격수 제레미 페냐도 “베이커 감독은 야구계 전설이다. 이 구단에서 그와 함께할 수 있었던 모든 날을 사랑했다. 그는 내게 잘해줬고, 신뢰가 엄청 컸다. 훌륭한 감독이었다”고 고마워했다. 베테랑 외야수 마이클 브랜틀리도 “베이커 감독은 경이로운 커리어를 쌓았다. 그 밑에서 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경의를 표했다.
현역 선수 시절 외야수로 통산 242홈런을 치며 2번의 올스타, 실버슬러거에 선정된 베이커 감독은 1993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사령탑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2년까지 샌프란시스코를 이끈 뒤 2003~2006년 시카고 컵스, 2008~2013년 신시내티 레즈, 2016~2017년 워싱턴 내셔널스를 거쳐 2020년부터 휴스턴을 이끌었다. 각기 다른 5개 팀을 모두 가을야구로 이끈 유일한 감독으로 26년 통산 4046경기를 지휘하며 2183승1862패 승률 5할4푼의 성적을 냈다. 통산 승수 7위로 포스트시즌 승리는 4위(57승). 10번의 지구 우승과 13번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올해의 감독상도 3차례나 받았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게 유일한 흠이었는데 지난해 휴스턴에서 한을 풀었다. 불법 사인 훔치기 사건이 드러난 뒤 단장, 감독 모두 해고된 2020년 1월 휴스턴 지휘봉을 잡고 분위기를 수습한 베이커 감독은 4년간 320승226패(승률 .586)를 기록하며 지구 우승 3번을 해냈다. 베이커 감독은 “우리는 많은 것을 극복했다. 부당한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이 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여기 온 지난 4년간, 오기 전 3년간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고, 팬이 아닌 사람들도 팬으로 만들었다”며 “야구는 힘든 스포츠다. 오랜 기간 정상에 머물기 어렵지만 휴스턴은 꽤 오랫동안 정상에 있는 팀이다”고 자랑스러워했다. /waw@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