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15만개 불태우고 세계 초일류가 됐다…'작은 거인' 3주기 [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삼성그룹 총수이자 삼성전자 회장을 맡았던 고(故) 이건희는 2014년 심근경색 증세로 쓰러져 자택 근처의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 심장이 멎었으나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호흡과 심장 박동이 살아났다. 하지만 의식이 깨어나지 못해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 스텐트 시술을 받고 VIP 병동에 입원했다.
주기적으로 사망설이 돌며 꾸준한 관심을 받던 이 선대회장은 6년 5개월 15일 동안 병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주역이다. 메모리 반도체·스마트폰·TV 등을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섰다.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났고 미국 실리콘밸리를 여러 차례 찾아 핵심 인재들을 물색하며 기술격차를 빠른 속도로 줄여나갔다.
'신경영'을 선언하며 혁신을 강조했던 이 선대 회장은 항상 거침없는 발언으로 이슈가 됐다. 그는 항상 위기에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한 회의에서는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농담이 아니다"라며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파격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안일한 직원들을 꾸짖기 위해 1995년 구미공장에서 '애니콜' 불량품 15만대를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당시 이 선대 회장은 "품질에 신경 쓰라. 고객이 두렵지 않나. 반드시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라고 말했다. 파격적인 일명 '애니콜 화형식' 이후 삼성 휴대전화의 불량률은 11.8%에서 2%까지 떨어졌다. 이는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2007년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에 대응하기 위해 '갤럭시S' 시리즈를 내놓았다. 당시 이 선대 회장은 최고의 품질을 위한 처절한 내부 반성과 자기 검증을 강조했다. 갤럭시S3가 출시를 앞두고 케이스 불량이 발생하자 일정을 연기하고 해당 케이스를 모두 폐기 처리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갤럭시S 시리즈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선대 회장은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했다. 현재까지 매년 연인원 50만명이 300만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보육원과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힘쓰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선대 회장은 도시 빈민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는 것을 두고 맞벌이가 필요한 저소득층 가정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것을 지적하며 어린이집 사업을 진행했다.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삼성은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여성 인력 공채를 도입하는 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양성평등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은 1993년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를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안내견 학교 사업은 시각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데 현재까지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선대 회장은 안내견 학교 사업뿐 아니라 진돗개 순종 보존 사업으로 국가 이미지 개선과 애견 문화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사회공헌과 함께 중소기업과의 공존 공생을 선언하고 상생 실천을 시작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 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이 밖에도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극복 등 의료분야에 1조원을 지원했으며 과학·의료·복지·체육 등 분야에도 폭넓게 공헌했다.
당시 이 선대 회장의 개인 소장품에는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점, '추성부도' 등 보물 46점이 포함돼 높은 관심을 받았다. 흔히 재벌가들이 과시나 투자를 위해 작품을 소장한 것과 달리 수집부터 의도를 갖고 국가에 기부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 미술사를 정리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선대 회장은 '문화 경쟁력'을 강조했다. 그는 재능 있는 예술 인재를 선발해 해외 연수를 지원하고 백건우와 백남준, 이우환 등 한국 예술인들의 해외 활동을 후원했다.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의 인재 제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제정한 '삼성호암상'도 수여해왔다. 삼성은 이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꾸준히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가 "한 기업의 수장일 뿐 아니라 한국의 수준을 글로벌 스케일로 업그레이드시켰다"라고 평했다.
삼성은 25일 이건희 선대 회장의 3주기를 맞아 수원 선영에서 조용히 추도식을 치른다. 추도식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마아라 기자 aradazz@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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