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사랑하는 '너와 나'에게

강효진 기자 2023. 10. 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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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 제공ㅣ그린나래미디어, 필름영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껍데기는 풋풋한 여고생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꿈처럼 뿌연 안개 가득한 필터 아래에는 먹먹한 아픔을 숨겨뒀다. 막이 내리고, 쉽게 잡히지 않는 감정 속 고민 끝에 '사랑'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너와 나'다.

'너와 나'(감독 조현철)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넷플릭스 'D.P.'(디피),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 다수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온 배우 조현철이 감독으로 나서며 내놓은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한 고등학교의 수학여행 전날부터 시작된다. 세미는 사랑하는 친구 하은이가 죽는 꿈을 꾸면서 하루 종일 호들갑을 떤다. 하은이는 갑작스러운 자전거 사고로 다리에 깁스를 해 함께 수학여행을 갈 수 없던 상황.

무단 조퇴 후 하은을 찾아간 세미는 함께 수학여행을 가자며 설득하고, 조르고, 애원한다. 아픈 다리도, 최근 오래 기르던 반려견이 떠나간 탓에 마음 상태도, 가정 환경도 녹록치 않았던 하은은 망설이면서 갈듯 말듯 세미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다.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 웃음이 터지는 여고생 그 자체를 표현한 두 사람의 말간 미소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눈을 맞추고, 소소한 장난을 치고, 별 것 아닌 농담에 쓰러지듯이 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단짝 여학생들의 모습 그 자체다.

특히 주인공 박혜수와 김시은이 나오는 장면 뿐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이 나오는 모든 장면까지 전부 애드리브인가 싶을 만큼 행동과 대사가 자연스럽다. 마치 감독이 여고생 출신인 것처럼 유행어나 욕설 없이 여자 고등학생 말투를 실감나게 구현했다. 기존 영화, 드라마에서 학생 티를 내겠다며 철지난 유행어 범벅을 해놓거나, 성인과 다를 바 없이 묘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 몰입을 위해 공들인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 영화 \'너와 나\' 스틸. 제공|부산국제영화제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는 점차 풋풋한 로맨스로 발전한다. 학창시절 또래 친구들끼리 느끼는 절친을 향한 각별한 애정으로 관객의 공감대를 쌓고, 이들이 설렘을 공유하는 지점을 풋풋하게 보여주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두 사람의 감정을 이어준다.

세미는 내가 좋아하는 하은이가 나랑 가장 친했으면 좋겠고, 내가 모르는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이 섭섭하다. 떠보듯 궁금한 걸 물어도 보지만, 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하은이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애매한 대답을 하며 세미를 밀고 당긴다. 결국 하은이 감춘 비밀 탓에 계속 오해를 쌓아가는 세미는 홀로 토라지고, 이런저런 과정 끝에 수학여행 직전, 늦은 밤에서야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담긴다. 특히 두 소녀가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눈을 마주친 채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은 사랑의 벅찬 설렘을 녹여 솜사탕으로 만들어둔 것 같은 장면이다.

영화 전반에는 전국민이 가슴 먹먹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여러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친구가 죽는 꿈, 안산의 고등학교, 제주도 수학여행, 교실에 걸려있는 거울 옆 나비 장식 등이 암시처럼 계속해서 언급되지만 2014년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아픔은 자식같은 반려견에 빗대 깊이감은 전달하되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특히 세미와 하은 뿐 아니라 함께 지내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평범한 일상에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누군가에게는 떠나간 이들의 숫자로 받아들여졌을 개개인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비춰주고 싶었을 감독의 마음 씀씀이다.

▲ 영화 \'너와 나\' 스틸.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숨어있는 영화 속 의미들을 눈치챘다면 잔잔하게 흘러가는 수학여행 이후 하은의 삶에 울컥함이 차오른다. 누군가의 납골당에 방문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오열하는 하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도시 전체가 텅 빈것처럼 하은이 혼자만 남겨진 모습으로 이후의 시간들이 가져올 아픔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유일한 단점인, 몰입을 방해할 만큼 자욱하게 깔린 안개같은 필터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걷히지 않는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혹은 꿈에서라도 즐겁게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알콩달콩하게 추억을 만들어갈 세미와 하은의 모습을 염원한 수채화 톤의 색감은 아니었을까 싶다면 이해가 갈 것도 같다.

칸을 찍고 돌아온 대단한 신인 김시은은 담백하면서도 날것 같은 에너지로 '너와 나'의 내추럴한 톤에 딱 맞는 하은을 보여준다. 박혜수는 배우의 개인적인 의혹과는 별개로 말간 얼굴과 어우러지는 천진난만한 연기를 더할 나위없이 소화해내며 감탄을 자아낸다. 두 사람의 말랑말랑한 케미스트리는 덤이다.

엔딩은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 고백으로 가득 채웠다. 그 날 이후 텅 비어버린 우리들의 가슴을 채워줄, 사랑하는 '너'와 '나'를 위해 반짝이는 위로를 전할 작품이다.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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