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역사적 선배’에서 독립군을 지우려는 사람들
“육사(육군사관학교)는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10월23일 열린 국회 국방위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한 말이다. 최근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및 ‘독립운동 영웅실’ 철거·개편에 대한 안규백 민주당 의원의 질문(“6·25 이전의 일제에 항거한 역사를 지우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냐”)에 저렇게 답했다.
"아사달 길이 누려 여기 반만년"
어떤 시민도 지금 육사에게 독립·항일 운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육사는 군대의 기간(基幹)인 장교를 잘 양성해야 한다. 그 장교들이 병사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즉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헌법 제5조, ’국군의 사명)’를 실현할 수 있는 의식과 지휘 능력을 갖추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면 된다.
육사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국가의 역사적 범위를 교가에 명시해두었다. 2절 첫머리의 “아사달 길이 누려 여기 반만년”이라는 구절이다. ‘정부 수립 이후 어언 75년(1948~2023)’이 아니다. 이 구절은, 단군부터 삼국시대-고려-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어떤 ‘정체성’이 유구하게 계승되었다고 ‘가정’한다. 이 정체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허구(상상)의 산물일 뿐인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단군부터 내려오는 어떤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합의 위에 서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예컨대 단군이 실존 인물이고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는지와 별도로 대한민국은 개천절을 국경일로 엄수해왔다.
그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킨 가장 최근의 사건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의 국권 강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3·1 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한 것은 ‘일제로 인해 잠시 끊어졌던 정체성을 대한민국으로 잇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이 계승한 그 정체성이 평화적으로 한반도 북부까지 확장되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의 꿈이다.
신라의 화랑(花郞)도 재정비 대상?
10월2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국군 수뇌부들은 “아사달 길이 누려 여기 반만년”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날 송갑석 민주당 의원과 박 참모총장 및 권영호 육군사관학교장이 벌인 논전에서 그들의 역사의식이 드러난다.
송갑석 의원은 우선, 육사 충무관 앞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계획’이 드러난 당시인 지난 8월25일 국방부 측이 낸 입장문의 다음 구절을 거론한다.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의 화랑(花郞)도 재정비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화랑이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가치를 체감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 같진 않다. 육사는 ‘화랑’대를 학교의 상징 명칭으로 사용해왔다. 육사의 주소는 ‘화랑’로다. 육사 생도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화랑’연병장에서 ‘화랑’의식을 실시한다. 송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만을 기준으로 놓는다면) 화랑이라는 상징이 육사에 “적절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권영호 육군사관학교장은 서슴지 않고 “적절하다”라고 답했다. “유구한 5000년 역사의 시작에 화랑이 있기 때문”이다. 박 참모총장 역시 “육사의 뿌리 정신은 한 시대의 정신이 아니고, (과거로부터) 이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민족)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육사의 모체는 군사영어학교?
그러나 국방부의 수뇌들은 일제에 의해 끊어졌던 그 정체성을 다시 이어 나가려 했던 노력과 희생엔 극히 냉담하다. 지난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은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신흥무관학교인가 아니면 국방경비사관학교인가”라는 안규백 의원의 질문에 “국방경비사관학교로 보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3·1 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개교한 신흥무관학교는 만주와 간도 일대에서 무장항일투쟁을 벌인 독립군들을 배출했다. 국방경비대는 1946년 1월 미 군정에 의해 창설되었다. 1945년 12월 설립된 군사영어학교(이후 국방경비사관학교로 개칭)는 국방경비대에 필요한 장교를 양성했던 기관이다. 군사영어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다수의 생도는 일본육사와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이었다.
민족 정체성의 입장에서, 식민지 종주국의 군사 엘리트를 희망했던 자들이 해방 이후의 국군과 장교 교육기관을 장악했었다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문재인 전 정부가 “독립군 역사를 우리 군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려 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사회(심지어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 시대까지)가 암묵적으로 합의해온 역사의식과 교육을 감안할 때 지금 국군(과 그 장교)의 ‘역사적 선배’를 독립군으로 설정하려는 시도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10월23일 국감에서 박정환 총장은 다음 같은 발언으로, 대한민국의 일반적 시민들과 견줄 때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심지어 이단적으로 느껴지는 역사 인식을 드러낸다. “국군은 광복과 동시에 태동했고, 1948년도에 정식으로 출범”했으며 “육군사관학교의 모체는 군사영어학교”다. 대한민국 국군은,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독립군의 전통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안규백 의원의 질의(“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 설치가 (육사의) 대적관을 흐리게 했다고 보느냐”)에 박 총장이 “일정 부분 흐리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한 것도 마찬가지다.
국방경비사관학교의 역사적 복수
“육사의 뿌리 정신”을 찾아 고대국가 신라의 화랑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박 총장이 (민족)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민족 개념에 비판적인 ‘탈근대 역사학’을 연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립군에 국군을 이어붙인 ‘역사 새로 쓰기(?)’로 국가주의나 전체주의가 강화될 것을 우려해서 이단적 역사관을 고집하는 것 같지도 않다. 이 같은 분열증을 그나마 분석할 수 있는 실마리는 지난 수년 동안 국내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 10월21일 육군이 민주당 정성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육사는 이미 지난 10월16일부터 홍범도·김좌진·안중근 등을 기리던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홍범도 흉상의 교외 이전과 별도의 조치다. 이런 광경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고 자부했으나 친일 경력으로 비판당해 온 국방경비사관학교 후예들이 신흥무관학교 관련자들에게 가하는 ‘역사적 복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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