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할아버지 제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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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는 명절이나 제삿날이 돌아오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명절날은 새 옷에 용돈이 생겼고 제삿날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머리부터 감고 깨끗하게 보관해 둔 흰옷으로 갈아입으셨다.
어머니는 조상님이 제삿날 음식을 드시러 오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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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왔다. 추석 차례를 지내고 며칠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아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명절 음식을 만들고 치우느라 허리를 펼 새도 없었는데 또 제사상을 차리라는 말을 차마 하기 힘들었다. '친구네는 제사도 안 지내고 명절 때는 가족여행을 간다는데'라며 빤히 쳐다 보던 아내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제사가 많았다. 사대봉사를 고집하다 보니 일 년에 여덟 번의 기제사와 두 번의 명절 차례를 더하면 거의 다달이 제사를 지내야 했다. 어렸을 때는 명절이나 제삿날이 돌아오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명절날은 새 옷에 용돈이 생겼고 제삿날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옷을 마련하고 그 음식을 준비해 준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은 장가들고 철이 들면서 알게 됐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머리부터 감고 깨끗하게 보관해 둔 흰옷으로 갈아입으셨다. 제사에 쓰일 쌀은 밝은 대낮에 상 위에 쏟아놓고 뇌와 돌을 가려냈다. 그리고 정성껏 쌀을 씻어서 그릇에 담아 삼배 보자기로 덮어뒀다. 한번은 제삿밥을 짓기 전에 어머니가 손짓했다. 따라가 보니 어머니는 보자기를 열고 손가락으로 낮에 씻어놓은 쌀을 가리켰다. 새 발자국 모양이 선명했다. 어머니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것이 조상님이 다녀가셨다는 증표인데 이 쌀로 밥을 지어도 된다고 허락하신 거라고 했다. 그 신비로운 형상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모르지만,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는 조상님이 제삿날 음식을 드시러 오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후손들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조상님의 제사를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제사상을 차려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기제사를 반으로 줄였지만, 기일이 돌아오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걱정하고 있는데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여보, 낼모레 할아버지 제사 준비해야겠네요!."
박진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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