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상식으로 포장된 개념
스포츠계의 상식적 개념을 경계
정확한 개념 정의에서 좋은 정책
2017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2030스포츠비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다. 문체부 과장과 사무관, 연구진이 모인 회의에서 한 연구원이 말했다. "국민의 사회자본 증진을 위해 스포츠 참여 정책을…" 갑자기 문체부 과장이 묻는다. "사회자본이 정확히 뭐죠?" 전문가끼린 모두 안다고 가정하며 사용하던 개념이 과장 귀엔 낯설게 들렸나 보다. 그 연구원은 이 정도쯤은 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고 있지 않나, 생각했던 것 같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가정된 채 통용되는 개념. 나는 이걸 '상식으로 포장된 개념'이라 부른다.
스포츠 정책에서 상식으로 포장된 개념은 골칫거리다. 예를 들어 '비인기 종목'이란 개념을 보자. 조세특례제한법 제104조의22에는 기업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인기 종목 운동부 운영 시 법인세 일부를 감면한다는 조항이 있다. 대통령령에서 정한 비인기 종목은 70여 개다. 대한체육회에서 회의 중 어떤 종목단체 회장이 이 법을 거론하며 자신들이 비인기 종목에 해당하니 지원금을 더 줘야 한다고 주장하시기에 여쭤봤다. '혹시 그 법이 제시한 비인기 종목 선정 기준이 뭘까요?' 물론 답은 듣지 못했다. 비인기 종목 개념의 기준이나 명확한 정의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이 최근 스포츠클럽법에도 등장했다. 법 제9조(지정스포츠클럽)에 따르면, 등록스포츠클럽 중 정부가 지정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초 종목 및 비인기 종목 육성'이다. 그 종목이 육상, 수영, 체조, 빙상, 스키다. 클럽 중 이들을 육성하겠다고 계획서를 내면 지정스포츠클럽으로 지정, 지원한다는 취지다. 궁금했다. 기초종목 및 비인기종목 규정의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황당하게도 기준 같은 건 없었다. 특히 비인기 종목은 명확히 규정할 수 없어 시행령 자체에 '기초종목 및 비인기 종목'으로 뭉뚱그렸다. 종목 구분에 따른 공적 자금 투입을 '상식'에 맡겨 버린 것이다.
스포츠계에 상식으로 포장된 또 다른 개념은 「스포츠기본법」에도 있다. 바로 '스포츠 권리'란 개념이다. 법 제4조(국민의 권리)엔 "모든 국민은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서 차별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이하 '스포츠권'이라 한다)를 가진다"고 적혔다. 국가와 지자체는 이 권리를 보장할 시책을 5년에 한 번씩 만들어야 한다. 난감하다.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설명된 스포츠권을 가지고 어떻게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요즘 지자체나 중앙정부 스포츠 관련 회의에 가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도대체 스포츠권이 뭔가요?" 이 개념 역시 상식으로 포장되었다. 심지어 예쁘게.
특정 개념이 상식으로 포장돼 통용되면 위험하다. 아무도 상식에 도전하지 않으려 하니, 그 개념은 영원히 불분명한 채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더 위험한 건 두 번째다. 그 개념을 기준으로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인기 종목' 개념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공적자금이 투입될 체육인복지법에서의 '체육인' 개념(체육계에 25년을 몸담은 나도 이 법에 따르면 체육인이 아니다), 현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촘촘한 스포츠 복지' 개념('스포츠 복지'와 그냥 '복지'는 뭐가 다른가?), 정책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스포츠 생태계'와 '스포츠계 선순환'이란 개념도 상식으로 포장되었다.
경계해야만 한다. 어떤 세계가 상식으로 포장된 개념으로 채워질수록 그 세계는 목소리 큰 자들이 판을 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비합리성의 합리성이 고착되며 결국 쇠퇴의 길을 걷는다. 요즘 스포츠계가 그렇다. 해결책은 뭘까? 의외로 간단하다. '개념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가?' 정중하면서도 집요하게, 이해될 때까지 물으며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 차원의 불협화음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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