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자사주 사는 셀트리온... 서정진만을 위한 ‘자사주 마법’ 사실상 예고됐다
소각 전혀 없는 셀트리온헬스케어는 5번째
주식 담보 대출 활용 가능성 주목
셀트리온헬스케어 흡수합병을 진행 중인 셀트리온이 또 자사주 취득에 나섰다. 주가 부진에 국민연금마저 주식매수청구권을 챙기고 나서자, 주가 부양 카드로 재차 자사주 취득을 꺼내 들었다. 셀트리온은 재원 마련을 위해 빚까지 졌는데, 소각 계획은 추후 내놓겠다고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셀트리온이 이미 자사주가 충분히 많다는 점이다. 이미 발행주식의 3% 이상이 자사주이고,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을 매입하면(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이 또한 자사주로 보유하게 된다. 여기에다 이번에 또 주가 부양 목적으로 자사주 취득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일각의 추정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전체 발행주식의 8% 이상이 자사주가 될 전망이다.
전날(24일) 셀트리온은 6% 넘게 올랐다. 셀트리온헬스케어와의 합병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그간 하락하다가 급반등했는데, 이 흐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자사주 취득은 잇따르는데 소각 계획이 불충분하다.
합병 이후 셀트리온헬스케어 자사주에 배정된 합병신주는 소각하기로 했으나 이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이란 지적이 나온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합병으로 소멸될 법인이기에 원칙적으로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는 것이 맞다. 실제 법무부는 2010년 소멸법인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셀트리온이 일부만 소각하고 대부분은 그대로 보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인데, 추후 확보하게 될 대규모 자사주 물량을 지배구조 개편에 사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23일 자사주 취득을 골자로 한 주가 부양 정책을 쏟아냈다. 당장 셀트리온이 3450억원을 들여 자사주 약 243만주 취득을 공시했고, 셀트리온헬스케어 역시 1549억원을 들여 자사주 244만주를 추가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셀트리온 기준 올해 6번째 자사주 취득으로, 회사 측은 “주가 안정 도모 및 주주가치 제고 취지”라고 밝혔다. 셀트리온헬스케어도 이번이 올해 5번째 자사주 취득이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이미 자사주로 각각 451만주(3.1%), 514만주(3.1%)를 갖고 있는 상황이다.
셀트리온의 주가 안정 도모, 즉 주가 부양은 현시점 셀트리온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23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셀트리온그룹 내 ‘한 지붕 두 가족’이었던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합병이 가결됐지만,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에 국민연금이 기권표를 던지고 주식매수청구권을 가져가면서 주가가 합병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영업양도 등 회사 결의에 반대하는 주주가 소유 주식을 일정가(셀트리온 15만813원, 셀트리온헬스케어 6만7251원)에 매입해달라고 청구하는 상법상 권리다.
기준가보다 주가가 낮다면 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이득으로, 국민연금도 이를 염두에 뒀다. 국민연금은 셀트리온 주식 1087만7643주(7.43%)를 보유한 2대주주다. 주가가 15만813원을 넘지 않아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 모두에 청구권을 행사한다고 가정할 경우 회사는 1조6405억원을 써야 한다.
시장에선 셀트리온의 자사주 취득 결정을 의아하게 봤다. 23일 하루 동안에 쏟아낸 ‘짐펜트라’(램시마SC의 미국명) 미국 식품의약품(FDA) 식품 판매 허가, 그리고 바이오시밀러 임상 3상 결과 발표 등 호재성 공시는 그렇다고 해도 재차 자사주 취득을 주가 부양 방안으로 꺼내서다.
무엇보다 셀트리온은 자사주 취득을 목적으로 5500억원 차입 방안까지 정했다. 빚을 내 자사주를 사들이겠다는 것으로, 시장에선 이상한 결정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연금 외에 소액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합병에 필요한 자금이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인 탓이다.
특히 자사주 취득은 그동안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주가 부양·주주가치 제고 단골 소재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소각 없는 취득으로 인해 주주가치 제고는 허울일 뿐 경영권 방어 목적이 더 짙다는 인식이 시장에 팽해진 탓”이라고 말했다.
이번 자사주 취득으로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흡수합병한 통합 셀트리온의 자사주 보유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 보통주 1주당 셀트리온 보통주 0.44주가 배정되는 구조로, 취득 예정 주식 수를 포함한 자사주 규모는 803만주, 총 발행주식 수의 4%에 해당한다.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 흡수합병 이후 셀트리온헬스케어 자사주 541만주(통합 셀트리온 합병 비율 기준 약 231만주)를 소각한다는 방침을 냈지만, 이번에 재차 244만주를 취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주식매수청구권 물량을 1조원으로만 잡아도 자사주는 약 두 배로 늘어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셀트리온이 겉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익을 챙기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셀트리온이 이번 자사주 취득까지 총 6번의 자사주를 취득하며 처음 꺼낸 소각은 사실 합병신주 물량으로 파악됐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가치 관점에서 소멸회사의 자사주에 굳이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데 셀트리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자사주 소각 역시 배정하지 않았다면 사라질 물량으로, 이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소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셀트리온 측 또한 찔리는 것이 있는지 증권신고서에 이와 같이 기록해놨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각 소멸회사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하거나 또는 취득예정인 소멸회사의 주식을 포함함)에 대해서 존속회사의 합병신주를 배정할 예정”이라며 “이에 투자자들께서는 유의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 배정은 판례에 의해 확립된 견해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자기주식에 대한 합병신주 배정과 관련한 법적 문제제기의 가능성이 있고 소액주주들이 합병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즉 셀트리온이 자사주를 현 최대주주를 위한 자사주 마법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셀트리온이 빚을 내가며 확보한 자사주를 담보 대출로 전환, 셀트리온의 셀트리온헬스케어 흡수합병 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증권거래법상 자사주는 취득 후 6개월 내에는 처분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자사주 담보 대출은 취득 시기와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다.
셀트리온은 이번 자사주 취득 재원을 단기 차입으로 마련한 상황이다. 즉 주식매수청구권에 응하려면 또다시 차입을 해야 한다. 쌓아놓은 자사주를 활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셈이다.
한 금융 전문가는 “합병으로 취득한 자사주로 셀트리온은 교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고 다른 회사와 지분교환을 할 수도 있다. 또 지배주주에 지분을 매각해 지분율을 높이는 데 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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