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무브]② 이기덕 삼성증권 CM본부장 “삼성이 잘 할 수 있는 여건 됐다... 내년 대기업 등장하면 시장 더 커질 것”
’전사 리소스 활용’ 기가비스·에이직랜드 주관
‘20조’. 2021년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에 들어온 돈이다.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홍수 속에서 만들어진 성적표다. 하지만 미국의 긴축 기조로 인해 잔치가 끝났다. 대어(大魚)들이 활개 치다 사라진 빈자리는 중소형주가 채우고 있고, 아무 공모주나 투자해도 이익을 내던 것도 옛일이 됐다. 최근 시장이 꿈틀댄다고는 하나 팬데믹 때와 같은 활황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투자자는 지금의 시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요 증권사 IPO 본부장들을 만나 시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명실상부한 ‘탑티어’(Top-tier) 주관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삼성증권에서 IPO 업무를 총괄하는 이기덕 IB1부문 캐피탈마켓(CM)본부장은 지난 18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증권과 IPO를 한 번도 안 해본 그룹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그룹은 없다는 말이 돌게 하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삼성증권은 올해 상반기 IPO 주관 실적에서 깜짝 선두로 올라서며 투자은행(IB) 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삼성증권은 오랜 세월 고액 자산가와 법인 고객 자산관리(WM) 부문의 탑 플레이어로 꼽혔지만, IPO 시장에서는 ‘전통의 강호’ 미래에셋·NH투자·한국투자증권에 가려져 있었다.
이 본부장은 “IPO를 단지 IPO팀에서만 담당하지 않는다”면서 “삼성증권의 WM 등 전사 리소스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2021년부터는 유니콘 기업(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대거 IPO에 나섰는데, 그런 회사들의 상장을 추진하며 실력을 증명해 냈다”고 강조했다.
올해 상반기 IPO 시장에는 눈에 띄는 ‘대어(大魚)’가 없었지만, 삼성증권은 그런 와중에도 반도체 기판 검사 및 수리 장비 업체 기가비스(공모가 기준 시가총액 5400억원)를 증시에 입성시키며 1위에 올랐다. WM 법인 고객사로 맺었던 인연이 상장 주관까지 이어졌다. 지난 9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반도체 설계 지원 업체 에이직랜드 역시 삼성증권의 WM 부문 법인 고객사였다.
삼성증권은 IPO 업계의 ‘퍼스트 무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업계에서 가장 먼저 제약·바이오 분야 전문가(박사)를 IPO팀에 들였는가 하면,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의 기술특례 상장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평가기관 출신 전문가를 발탁했다. 이 역시 IPO 업계 최초 사례라는 게 삼성증권 측 설명이다.
이 본부장은 올해 다시 훈풍이 돌기 시작한 IPO 시장의 분위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올해 시가총액 기준 최대 규모 IPO를 추진한 서울보증보험이 미국 국채 금리 상승 여파로 상장 철회를 택했지만, IPO 시장의 체력 자체는 강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회계사 출신인 이 본부장은 2007년부터 삼성증권에서 IPO를 담당했다. 그는 “올해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시장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시장 규모가 4조원은 될 것”이라면서 “10년 전 1조~2조원 수준이기도 했던 시장의 체력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의 도약 배경을 내부에선 어떻게 분석하나.
“삼성증권은 삼성생명이 대주주인 삼성그룹의 계열사다 보니 IPO 딜 파이프라인이 비교적 제한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IPO 시장에 나서는 주요 기업들이 중소 기술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삼성증권이 더 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또 삼성증권은 IPO를 단지 IPO팀만 담당하지 않는다. WM 법인 고객의 성장 전략으로 IPO를 제안하는 식이다. 올해 상반기 실적에는 ‘코스닥 IPO 최대어’였던 기가비스의 역할이 컸는데, 기가비스 상장 주관이 WM에서 출발했다. 기가비스는 WM 법인 고객이었다.”
-중견·중소기업 기술특례 상장 주관 실적이 많은 이유가 있나.
“2022년 기술평가기관의 영업 담당 인력을 IPO팀 내로, 대형 증권사 중에선 처음으로 채용했다. 기술특례 상장은 거래소에 심사를 청구하기 전 기술성 평가부터가 상장 절차의 시작인데, 이 부분을 직접 챙기고 있다.
또 본부 내 공대 출신 부서장, 기술 기업의 기술특례 상장 주관 사례 등이 쌓이면서 점차 더 주목받고 있다. 2021년 7월 인원을 확충해 바이오, 소비재 외에 정보기술까지 3개팀, 팀당 15명의 안정적인 체계를 구축, 현재까지 2년여 시간을 보내며 경쟁력을 키웠다.”
-제약·바이오 전문 인력도 갖췄다. 바이오 외면 상황에서 부담이 되진 않나.
“IPO 시장에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외면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팀 내 바이오 전문 인력은 얼어붙은 바이오 투자 심리에도 주목받을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 스토리를 만드는 데 힘이 된다. 또 최근엔 헬스케어·의료기기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보증보험이 상장 철회를 택하는 등 시장이 또 침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IPO 시장 자체의 침체라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로선 서울보증보험의 사례가 특수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서울보증보험은 배당주로서의 매력을 내세웠는데, 수요예측 기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에 가까운 수준으로 뛰는 등 악재를 겪으면서 매력이 반감돼 버렸다.
하반기와 내년 시장 분위기를 가늠하려면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어떻게 될지 봐야 한다. 지금 분위기에선 괜찮을 것으로 본다. 시장이 위축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올해 IPO 시장 규모가 4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국내 IPO 시장의 체력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IPO 시장의 체력이 달라졌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2021년 20조원, 작년 16조원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연간 평균 공모액은 약 4조원이다. 시장이 안 좋다고 했을 땐 1조~2조원 수준에 머문 때도 있었다. 올해는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 기업이 5개도 안 됐지만, 그래도 4조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전체 공모 규모가 20조원까지 가본 적 있는 시장인 만큼 시장의 유동성 자체가 커졌다고 본다. 두산로보틱스 일반 공모 청약에 33조원의 증거금이 몰리는 등 여전한 유동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대기업 계열사들이 내년 중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등장하면 시장은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내년 상장을 예정한 대기업에는 어떤 곳들이 있나.
“주관사를 선정한 상태로 내년 상장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곳만 해도 우선 HD현대글로벌서비스, LG CNS 등이 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SSG닷컴도 내년 상장을 재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외에도 올리브영 등 상장 주관사를 선정한 대기업 계열사들이 몇 더 있다.”
-최근 관심을 두고 살피는 업종은.
“IPO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을 꼽자면, 성장하는 산업 또 시장이 주목할 만한 업종의 좋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자에게 알려줬을 때다. 이때 IPO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사명감과 보람을 느낀다. 과거 수소 산업을 조망하게 했던 일진하이솔루스의 상장이 그랬다.
지금은 반도체, 인공지능, 그리고 우주 산업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는 사이클이 다시 한번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 외에 국내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들의 기술 경쟁력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다.”
-좋은 기업은 어떻게 판단하나.
“기술력과 사업 모델을 바탕으로 정말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언제 창출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 구체적으로는 ‘토탈 어드레서블 마켓(Addressable Market·잠재 시장)’을 따져본다. 해외에도 통용되는지,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엔 이익을 낼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성장 스토리가 잘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모두 기업가치 책정을 위해 선정한 비교 기업과 다른 기업임을 주장한다. 비교 기업 대비 무엇을 더 잘하고 또 잘할 수 있는지 선명하게 보이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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