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눈길 피하려 장외거래 시도…영풍제지 주가조작 세력의 ‘꼼수’

박채영·유희곤 기자 2023. 10.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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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책이 작성한 문건 보니
전환사채 등 감독 강화하자
저가로 ‘장외 현금화’ 계획
경향신문이 입수한 영풍제지 주가조작 세력의 내부 문건.

영풍제지 주가조작(시세조종) 세력이 주가를 띄운 후 고점에서 장내 매도하는 통상적인 방식 대신 장외에서 저가로 팔아 현금화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올해 잇따라 주가 폭락 사태가 발생한 후 모니터링을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시장가보다 30% 할인된 가격으로 매각하면서도 이를 장외에서 매입한 다른 투자자가 장내에서 일정 기간 매도하지 못하게 해 시세 하락을 막으려는 시도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영풍제지 주가조작 세력은 투자자를 모으는 모집책을 운영하면서 보유 중인 주식 일부의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계획을 세웠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영풍제지 주식 담보대출 및 운영의 건 Ⅱ’는 모집책이 작성한 문건으로, 작성 시기는 영풍제지 주가가 4만7900원까지 올랐던 때로 추정된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8월28일 4만7650원을 기록한 후 9월8·11일에는 4만8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말 종가(5291원)와 비교하면 9배 이상 급등한 수준이다.

이들은 영풍제지 주식을 장외에서 한 달 평균 가격의 70%에 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장외에서 거래하면 할인된 가격에 팔아도 주식시장의 주가를 유지할 수 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기자와 통화하며 “어차피 뻥튀기한 주식을 현금화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던 만큼 30% 할인된 가격에 팔아도 손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가조작 세력은 ‘홀딩 기간’(보유 기간)을 부여하기도 했다. 할인가로 주식을 사간 투자자가 곧바로 시장에 주식을 되팔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장가의 70%에 주식을 매각하되 투자자들에게는 거래대금의 7분의 4는 즉시 지불하고 나머지 7분의 3은 6개월에서 1년 후에 지불하도록 했다.

예컨대 투자자가 10만원에 거래되는 주식을 30% 할인된 7만원에 사는 대신 4만원은 먼저 내고 3만원은 홀딩 기간 후에 지불하게 했다. A씨는 “홀딩 중인 주식 수가 많을수록 주식 유동량이 줄어 주식을 대량으로 현금화하더라도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도 시장가의 40%에 불과한 가격에 주식을 우선 사면서 레버리지(차입) 효과를 볼 수 있고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면 더 이득을 볼 수 있다.

다만 주가조작 세력은 홀딩 기간에 영풍제지 주가가 시장에서 30% 넘게 하락하면 투자자에게 처음 계약한 금액을 모두 즉시 지급하도록 했다. 예컨대 투자자가 10만원짜리 주식을 7만원에 사기로 약정을 맺고 4만원만 미리 지급했는데, 주가가 7만원 아래로 하락하더라도 나머지 3만원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판매자가 매도 당시 30% 할인가를 넘는 손해를 보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한 셈이다. 이는 투자자가 증권사에 담보를 제공하고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는 신용융자거래 등에서 주가가 담보 이하로 떨어질 경우 증권사가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반대매매에 나서는 것과 유사한 행태다. 하지만 홀딩 기간이 끝났을 때 주가가 판매가보다 오른다면 그 이익은 투자자가 모두 갖는 것이 아니라 판매자와 50 대 50으로 나누도록 했다.

A씨는 “올해 주가조작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금융당국이 전환사채(CB) 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자 이상거래 적발을 피하면서도 현금화를 쉽게 하기 위해 홀딩 기간을 부여한 장외거래를 시도했던 것”이라며 “실제 일부 주식은 계획대로 현금화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씨는 이런 내용을 금감원에 지난 9월 제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제보에 따른 보복이 두려웠지만 제보했다”며 “주가조작은 과거에도 잡지 못했을 뿐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채영·유희곤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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