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용 GH 사장 "양보다 질…사람에 집이 맞춰야"[영상]
건축공학 박사이자 도시계획 전문가
非 LH 출신…획일적 주택공급 비판적
"'집에 맞춰 살라'? 이젠 무리한 요구"
생애주기별‧지분적립형 주택 트레이드마크
베이비부머 주거 복지 사각…
'시니어 하우스 모델' 연내 발표
"1~3분위 임대, 4~7분위 지분적립"
"1‧3기 신도시…경기도가 밑그림 그려야"
"직주락(職住樂)…경기도 성장 잠재력 UP"
20대 A씨는 직장과 가깝거나 '역세권' 집을 원한다. 대부분의 식사를 외식이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싱크대는 필요 없다. 40대 B씨는 아이의 교육환경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정적인 '내 집'이 필요하다. 60대 중반에 자녀들과 아내와도 떨어져 지내게 된 C씨는 외롭다. 텅빈 큰 집보다는 서로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가 절실하다. 움직임이 불편한 80대 D씨는 '스마트'한 돌봄이 필수적이다.
"'집에 맞춰 살라'? 이젠 무리한 요구"
나에게 '딱' 맞는 집은 없을까.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은 "전국에 똑같은 집을 지어놓고 '당신들이 집에 맞춰 살라'는 건 이제 무리한 요구"라며 "양보다는 질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지방도시공사 사장으로는 흔치 않게 국토부나 LH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건축공학 박사이자 도시계획 전문가로 30여년을 이쪽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온 그는 국토부와 LH의 획일적 주택공급 방식에 비판적이다.
"국민 소득 3만 불이 넘는 나라에서 전국에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들어서고, LH라는 거대 기업에 집중된 권한을 주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이고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경남 통영에 사는 사람과 경기도 수원에 사는 사람이 다르고, 세대별로도 원하는 주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주택'과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3년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일 때 처음 설계했던 이 모델들이 마침내 경기도에서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주거정책 사각…'시니어 하우스 모델' 연내 발표
먼저 20~30대 1인 가구들은 어떤 집을 선호하냐고 물었다. 질문에 그는 20~30대가 어떤 가구를 가장 선호하는 지 되물었다. 정답은 '에어컨'이었다.
"(20~30대들은) 일주일에 거의 한 번도 집에서 밥을 안 해 먹습니다. 그런데 청년주택 한 쪽 면이 다 싱크대입니다. 쓸데없는 낭비인 거죠. 가장 선호하는 가구를 물었더니 '에어컨'이랍니다. 주방을 대폭 줄이고 그 비용으로 빌트인 에어컨을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맞춰 나가는 겁니다."
그가 경기도에 와서 베이비부머인 60대에 주목하게 된 이유도 같다. 경기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450만 명)이 베이비부머다. 문제는 그들이 1인 가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경기도내 베이비부머 1인 가구 비율이 20~30대보다 오히려 더 높다.
김 사장은 "베이비부머들이 1인 가구로 계속 분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은퇴 후 세대는 돈이 많고 여유가 있다는 그릇된 편견 때문에 그동안은 주거 정책의 사각지대였다"고 했다.
"실상은 돈도 없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더 많은데, 30년은 더 버텨야 한다"며 "은퇴 이후 시니어들을 위한 주거 모델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시니어 하우스 모델'을 올 해 안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주거문화의 질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3분위 임대, 4~7분위 지분적립…경기도 주택정책 '촘촘히'"
주택 선택에 있어 편리성 못지않게 중요한 건 '안정성'이다. 얼마나 지속적으로 거주할 수 있느냐. 경제 문제와 닿아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임대 혹은 자가, 경제적 형편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지난 9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모델을 내놓은 배경이다. 이 모델은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인정한 결과다.
"인간은 수명이 늘어 날 수록 미래를 불안해 합니다. 임대주택에 50년, 60년 살 수 없잖아요. 결국은 내 집이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목돈이 없어요. 그래서 적금 붓듯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한 겁니다."
적금을 매월 납입해 목돈을 만드는 것처럼 꾸준히 주택 지분을 늘려가면 온전히 내 집을 갖게 된다. 10년 이후부터는 전매도 가능하다. 양도차익 또한 확보한 지분만큼 내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광교신도시내 5억원 대 아파트를 최초 부담 비용 1억2500만원(지분 25%)에 매입할 수 있다. 이후 20년에 걸쳐 나머지 지분을 4년마다 7500만원 정도씩(지분 15%)을 내고 분할 취득하는 방식이다.
다만 1년에 1875만원, 월로 계산하면 156만원씩을 적립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 돼야 함을 뜻한다.
김 사장은 "소득 수준 4~7분위 정도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통해 자가 소유를 유도하고, 1~3분위를 위한 공공임대주택도 꾸준히 공급한다는 게 민선 8기 주택 정책의 기본 골격"이라며 "공공임대 거주 가구 비율을 9%에서 12%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세대별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다양한 주택 유형을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3기 신도시 개발…경기도가 밑그림 그려야"
김 사장은 이처럼 지역별‧세대별 맞춤형 주거 공급을 위해서라도 국토부‧LH 중심의 개발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가 도시 개발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1‧3기 신도시 개발이나 반도체 산단 조성 등도 LH가 아닌 GH가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GH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지역 특색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도시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
"'나홀로' 임대주택 같은 주민들 니즈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집들이 마구잡이로 지어져 왔던 게 사실입니다. 전국에 임대주택 공실만 몇 만호가 있어요."
김 사장은 주민들 입장에서도 LH가 아닌 GH가 개발 주도권을 쥐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그는 "(주민들도) 개발하고 손 털고 나가는 기업이 아니라, (하자 등)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부를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GH의 역할도 유지 관리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GH 직원들에게 '빌더(Builder)'가 아닌 '타운 매니저(Town Manager)'로의 변신을 주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주락(職住樂)' 산단…경기도 경제 성장 잠재력 UP"
김 사장은 또 '경제도지사'를 표방하고 있는 김동연 지사와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 경기도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산단 개발 모델에도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 곳에서 '직장'과 '주거'와 '노는 것'이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는 '직주락(職住樂)'을 통해 업무 효율과 능률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1판교의 연 매출액이 120조가 넘었습니다. GH가 지금 조성중인 2판교, 3판교에 우수 기업들이 들어와야 하고, 이들 기업들은 '직주락'의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산단에 주택과 노는 것까지 같이 짓는 이런 식의 개념을 판교에서 시작해서 널리 퍼지게 할 겁니다."
고양 테크노밸리, 용인 플랫폼시티, 용인 반도체 산단 등도 각각의 도시 기능에 맞게 최대한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배후도시를 개발할 계획이다.
그동안 경기도는 서울의 베드타운이었다.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버스안에서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공간'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김 사장은 "앞으로 GH가 짓는 공간들은 10년 안에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경기도는 이제 세계 여러 개발자들이 원하는 그런 '공간'으로 점차 그레이드업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기회발전소'에서 김세용 GH 사장과 1시간여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기회발전소'는 그의 말대로 로봇이 이동할 수 있도록 문턱과 같은 장애물을 모두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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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윤철원 기자 psygo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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