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4년간 전 세계 무전여행하고 창업한 박재병 케어닥 대표 "이제는 에이지테크 시대"

최연진 2023. 10. 25.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40개국 돌며 외국 대통령 만나고 노숙자 생활도 체험
요양등급 없는 노인들 포함한 돌봄 서비스와 주거 사업으로 차별화

4년. 신생기업(스타트업) 케어닥의 박재병(34) 대표가 창업 준비를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투자한 시간이다. 이 기간에 그는 전 세계를 돌며 무전여행을 했다. 때로는 낯선 이국의 길거리에서 노숙자로 살며 구걸을 했고 때로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극과 극의 체험을 했다. 굳이 어려운 방법을 택한 까닭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 즉 인생의 답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독특한 창업기를 들어봤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노인돌봄 앱을 보여주며 에이지테크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요양등급 없는 노인들에게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며 노인들을 위한 주거공간 임대사업도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해답 찾아 떠난 세계일주

부산대 경영학과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박 대표는 대학 시절 학군사관(ROTC) 후보생을 하며 단과대 학생회장을 겸했다. 그는 삼성물산 등 대기업 3곳에 합격하고도 입사를 거부했다. "직장에 다니는 선배들이 모이면 회사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어요. 그럴 거면 왜 회사에 다니는지 와닿지 않았죠."

그래서 취업보다 창업을 택했다. "남들은 50대 창업을 많이 얘기했는데 저는 거꾸로 20, 30대에 창업해 향후 50년을 정답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그는 삶의 정답을 찾기 위해 군 전역 6일 뒤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것도 밑바닥부터 샅샅이 훑기 위해 무전여행을 택했다.


도둑과 강도도 피해 간 노숙자 생활

그렇게 2014년 불쑥 떠난 무전여행이 2017년까지 3년 6개월간 이어지며 유럽부터 미주까지 전 세계 40개국을 돌았다.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이동했고 공동묘지에서 자거나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구걸부터 식당일, 화장실 청소 등 해 보지 않은 일이 없다.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구멍 난 옷을 입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브라질 빈민가 파벨라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한 번도 도둑맞거나 강도를 당한 적이 없어요. 도둑과 강도도 피해 갔죠."

노숙은 그의 삶을 바꾼 충격적 경험이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치며 무시하는 일을 겪으면 나중에 자아가 사라져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구 굴리게 되죠."

그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존재는 뜻밖에도 다른 노숙자였다. "어떤 노숙자가 갖고 있던 돈을 털어 밥을 사주며 아직 젊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격려해 줬어요. 그때 받은 도움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케어닥이 경기 시흥시 배곧동에 마련한 노인주거시설 '케어닥 케어홈' 1호점. 케어닥 제공

우루과이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을 만난 것도 잊지 못할 사건이다. "농부 출신 무히카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서민에게 개방하고 가난한 삶을 추구해 유명했어요. 그래서 만나보고 싶어 여러 번 대통령궁을 찾아갔는데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마침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들른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그의 사연을 듣고 무히카 대통령 방문 길에 데려가 그가 만나는 장면을 촬영했다. "무히카 대통령의 성공담을 듣고 저의 고민을 얘기했어요. 무히카 대통령은 당신의 꿈을 찾으라는 얘기를 했는데 특별한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주는 힘이 있었죠."

마찬가지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무대뽀'로 찾아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DC의 백악관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갔죠. 백악관 앞에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한 달 반 동안 시위를 했어요."

결국 미 대통령 경호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백악관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까지 모두 찾아내 조사했어요. 그런데 군 경력이 문제가 됐죠. 장교로 복무한 사실을 알고 총기를 다룰 줄 아느냐고 묻길래 권총부터 자동소총까지 모두 쏠 줄 안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위험인물 취급을 당했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어요."


쪽방촌 노인 도우며 에이지테크 구상

세계여행을 통해 찾은 답은 남을 위한 삶이 나를 위한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에 무전여행이 가능했죠. 곳곳에서 받은 도움을 갚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앞으로 이를 갚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여행사를 차려 일하며 쪽방촌 노인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했다. "1년간 노인들을 돌보며 노인 복지에 구멍이 많다는 것을 알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기술(IT)로 노인 복지를 끌어올리는 지금의 회사를 2018년 창업했어요."

박 대표는 케어닥을 굳이 에이지테크라고 소개했다. "실버테크는 노인을 보호대상인 약자로만 보는 관념이 배어 있어요. 반면 에이지테크는 노인을 단순히 약자로만 보지 않고 나이 들어 일상생활이 불편한 사람들로 봐요. 이들에게 기술로 도움을 주는 회사죠."


요양등급 없는 노인들까지 돌봄 서비스 제공

그가 에이지테크로 강조하는 것은 돌봄과 주거 사업 등 크게 두 가지다. 돌봄은 일상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이고, 주거 사업은 적절한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돌봄 서비스의 경우 일부 실버테크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아 노인 요양보호센터를 인수해 외연 확장에만 치중하다가 돈을 벌지 못하자 결국 요양보호센터를 팔거나 문을 닫아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바람에 덩달아 실버테크 스타트업 전체가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과 차별화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일부 실버테크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에만 치중해 빚어지는 문제로 봤다. "국내 장기요양기관이 4만5,000개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노인요양등급 대상자들에게 제공하는 약 13조 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아 매출을 내요. 그런데 보조금은 한도가 정해져 있어 수익을 내기 힘들어요. 그래서 비용 절감을 하며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죠.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실버테크 전체를 부정적으로 볼까 봐 걱정이에요."

차별화를 위해 박 대표는 요양등급이 없는 노인들에게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내 만 65세 이상 인구가 930만 명입니다. 이 중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노인요양등급 대상은 9%, 85만 명이에요. 나머지 800만 명 이상의 노인에게도 생활돌봄이나 방문운동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을 넓혔죠."

여기 필요한 방문요양돌봄센터를 직영점과 가맹점 포함 23개 운영한다. 여기서 돌봄 서비스를 받는 노인이 월평균 1만 명을 넘어섰다. "10개 직영점은 매출이 빠르게 오르며 8월부터 흑자를 냈어요. 앞으로는 가맹점들을 늘리고 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직영점을 늘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는 회사를 에이지테크로 소개했다. 그는 에이지테크를 "노인을 약자로만 취급하는 실버테크와 달리 노인을 약자로 보지 않고 이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기술로 제공하는 회사"라고 정의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주거 요양 시설과 시니어 타운으로 확장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건국대부속병원 등 주요 상급 병원 및 131개 요양병원과 계약을 맺고 간병 서비스도 제공한다. "간병인을 모집해 따로 마련한 교육원에서 교육을 거쳐 파견해요. 이들을 병간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해 주고 간병인 비용의 4~15%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죠."

박 대표는 풍부한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확보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10만 명가량의 간병인 및 요양보호사가 등록돼 있어요. 이 중 매달 3,500명의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를 연결해 주고 이들에게 월평균 65억 원을 정산하죠."

올해 6월부터 노인들을 위한 주거형 요양 서비스 '케어닥 케어홈'도 새로 시작했다. 집처럼 꾸민 요양시설에서 돌봄을 받는 서비스다. "요양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노인들을 위한 주거시설이죠. 기린종합건설과 경기 시흥시 배곧동에 1호점을 열었고 2, 3호점을 경기 송추와 용인에 준비 중입니다. 10호점까지 늘려야죠."

이를 고급화한 임대 주거시설 '케어스테이'도 최근 서울 일원동 일대에 1, 2호점을 마련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삼성서울병원이 있어 지방에서 치료차 올라온 노인들이 머물기 좋죠."

대기업 건설사와 시니어타운도 준비한다. "주주인 롯데호텔 등 대기업 3, 4곳과 함께 고급형 시니어타운을 건설해 임대하는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주거 공간과 돌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곳으로 2025년 이후 1호 타운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성과에 따라 보조금 다르게 지급해야 실버테크 산업 발전"

케어닥은 지난해 4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200% 성장했어요. 올해 매출도 200% 이상 성장이 목표입니다. 이미 상반기 매출이 43억 원을 넘었어요." 다만 아직은 적자다. "올해 말 월간 흑자를 예상하고 내년 초 손익분기점에 다다를 겁니다."

투자는 하나은행, 현대해상, 기업은행 등에서 누적으로 약 150억 원을 받았다. 이를 통해 인력을 확충해 전체 직원이 130명에 이른다.

박 대표는 실버테크 산업이 발전하려면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요양보호사 파견 숫자가 아니라 노인의 일상생활 회복에 기여한 성과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필요해요. 그러면 장기적으로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 겁니다. 노인이 건강해지면 보조금이 덜 나가니까요."

이제 그에게 인생의 목표는 회사가 됐다. "어떻게 살지 답을 찾아 창업한 회사를 오래 하면서 직원들과 성과를 나누면 좋겠어요. 더불어 노인 돌봄 문제에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