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대 노총 회계 공개, 정부가 원칙 지키니 바로잡히는 것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 도입에 반발해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결국 회계를 공시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조합이 조합원에게 회비를 걷는다면 얼마를 걷어 어떻게 썼는지 알리는 것은 법을 떠나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유독 노조들은 이를 감춰왔다. 뭔가 구린 곳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회계 공개 제도 도입을 추진하자 두 노총은 “노동 탄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무슨 탄압인가. 떳떳하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노조 저항에도 원칙을 지키며 단호하게 추진해나가자 결국 손을 들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에 가입한 근로자는 각각 100만명이 넘는다. 매년 걷는 조합비가 각각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일부 정부 지원금까지 받고 있다. 그동안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불법 집회·시위 자금으로 쓰이는 것은 아닌지, 일부 간부가 비리를 저지르는지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다. 노조 회계는 일부 노조 간부만 아는 비밀이었다. 어떤 조직이든 투명한 회계 관리는 민주적 운영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노총들이 상식을 되찾아 회계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정부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는 노조엔 연말정산 때 조합비 15%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러면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에 반발할 수 있다. 이를 우려한 양대 노총이 회계 공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노조 회계 공시는 노동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 노조 병폐는 말 그대로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 양대 노총 산하의 거대 노조만큼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2012~21년 임금 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 손실 일수가 38.5일로 일본(0.2일)의 192배에 이를 정도다. 영국(12.7일), 미국(8.8일) 등 다른 주요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특히 민노총은 노조 본연의 활동과는 무관한 반미·반정부 정치 투쟁으로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해왔다. 강경 투쟁과 불법 파업, 폭력, 갑질, 회사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과도한 요구, 정치 파업, 무분별한 집회, 고소·고발·진정 남발 등도 우리나라 거대 기득권 노조의 고질적 병폐다.
노조 병폐를 바로 고치기는 힘들다. 정부가 이번처럼 원칙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불법행위에 대해선 신속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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