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좋은 환경 만들어야 한다는 동아시아 ‘체면 의식’이 저출산 원인”

윤상진 기자 2023. 10. 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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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저출산 대책 왜 실패했나’ 저자 인구학 권위자 야마다 교수 강연

“한국에선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압박이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일본의 인구학 분야 권위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주오대 사회학과 교수가 진단한 한국 저출생 위기의 주요 원인은 ‘체면 의식’이었다. 자신보다 나은 환경을 자녀에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아시아 국가는 서구 사회보다 자녀에 대한 책임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할 자신이 없으면 결혼과 육아를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이런 인식이 더 깊다는 것이다.

야마다 교수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4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마련한 ‘소멸하고 있는 일본, 빠르게 추월하는 대한민국’ 강연회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자녀에 대한 ‘체면 의식’이 높게 나타난다”며 “일본은 자녀 학력에 집착하는 부모가 많지 않지만, 한국에선 많은 부모가 해외 유학까지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가파른 경제 성장을 경험하면서 자신보다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하면 자신을 ‘낙오자’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는 것은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갖지 못한 청년이 늘어나며 혼인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마다 교수는 일본 사회의 연애와 결혼, 저출생 문제를 연구해 왔다. 그는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청년을 뜻하는 ‘패러사이트(기생충) 싱글’이라는 용어로 청년 세대 내 양극화 문제를 공론화했다. ‘일본의 저출산 대책은 왜 실패했는가’ ‘가족 난민’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한국보다 앞서 일본에서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진 것도 ‘독신 생활에 비해 결혼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경제 성장이 멈춘 1990년대 이후 청년 세대의 경제 격차가 커지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젊은 남성을 결혼 상대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확산되며 혼인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가 장기간 경제 침체를 겪으며 ‘상승 의욕’을 상실한 청년이 많아졌고, 연애와 결혼 대신 아이돌·가상 세계 등에 몰두하며 행복을 찾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일본은 2008년부터 신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는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2010년 전후 110만명이던 신생아는 2022년 77만명으로 줄었다.

야마다 교수는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 세대가 경제적인 안정을 통해 결혼과 출산이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게끔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저출생 대책이 어린이집 지원이나 육아휴직 확대 등 육아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그는 “육아 지원책은 대도시의 정규직 맞벌이 부부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대다수의 비정규직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비정규직에게도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제도가 적용되도록 정책이 확장돼야 한다”고 했다. 주3일 근무제 등으로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혼 이후 육아 비용에 부담감을 느끼는 청년들을 국가가 나서 도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야마다 교수는 “동아시아 문화권은 대학까지 자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결혼부터 노후까지 ‘중간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녀들의 고등교육 비용 등을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 대책도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일본 지방 지역엔 여성 차별 관행이 여전해 대다수 여성들은 비정규직 등 낮은 지위로 남아 있다”며 “수입이 안정적이고 조건이 좋은 남성을 찾다 보니 결혼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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