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37] 역사의 복원
어쩌면 나는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교통 혼잡을 초래했던 오랜 공사를 끝내고 광화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이 백성과 소통하던 월대를 복원했다고 한다. 중국 사대의 표상이라며 세종대왕이 반대했던 경복궁 월대는 1866년에 만들었다. 국사 수업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의 목적은 왕권 강화였다. 원납전 강요, 당백전 발행, 높은 세금과 무리한 인력 동원은 조선의 몰락을 가속했다.
화폐에는 보통 그 나라 대통령, 국왕, 정치인의 얼굴을 새긴다. 일본과 유럽의 국가들은 과학자, 작가, 예술가의 초상을 넣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화폐는 조선 시대, 그중에서도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만 기린다. 다른 성씨를 가진 여성도 이씨 집안에 시집와 아들을 낳은 사람이다. 대한민국 돈으로 보이는 건 무궁화를 새겼으나 거의 사라져 버린 1원짜리 동전뿐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의 영어 표기는 ‘People Power Party’다.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도 ‘People’이다. 조선을 이상적인 국가라 믿고 북한에 대한 경계심은 지우고 일본을 적대시하는 게 대세다. 조선을 아끼고 인민을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으뜸 덕목으로 여기자며 ‘조선인민민주주의’로 나라 이름을 바꾸자고 하면 반대의 목소리만 나올까?
소설 속 토니가 기억하는 고등학교 시절은 40년 후 알게 된 실제 과거와 전혀 달랐다.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결국 역사의 복원이란 상상력을 더해 현재의 주장을 덧칠하는 작업이다.
광화문은 왜 고작 57년간 존속하다 1923년에 없어진 형식을 고집할까?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이 현재의 자화상이자 그 사회의 미래다. 100년 후엔 대한민국 발전사를 복원하는 열풍이 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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