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46] 미국과 통화 스와프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2023. 10.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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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이처럼 남의 일에는 열심히 끼어들지만, 정작 자기 일은 서투르다. 이란이나 쿠바와의 관계 회복에 진척이 느리다.

미국에 쿠바는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존재다.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정부가 1960년 7월 미국 자산을 동결하면서부터다. 절치부심하던 미국은 1961년 4월 쿠바 망명객들을 부추겨서 혁명정부 전복을 시도했다.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다. 그런데 처참하게 실패했다. 취임한 지 석 달 만에 국내외적으로 크게 망신당한 케네디는 1962년 2월 쿠바와의 모든 교역과 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그해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드러나서 미소 양국이 핵전쟁 위기로 치달았다. 그러는 사이에 국제 금융 시장에서 미 달러화 가치를 의심하는 투매 현상이 벌어졌다. 자금이 급속히 해외로 빠져나가자, 미국 재무부로 불똥이 튀었다. 유럽 금융 시장에서 연 4.5%의 고금리로 7년물 국채를 발행해서 외환 보유액을 채웠다.

미국이 외환 보유액 부족으로 쩔쩔맨 것은 1893년 금융 위기가 마지막이었다. 미국이 금융 후진국일 때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고의 기축통화 국가로 발돋움한 미국이 돈을 꾸려 외국을 기웃거리는 것은 이상하고 창피했다. 그래서 은밀한 방법을 찾았다. 1962년 초 윌리엄 마틴 연준(중앙은행) 의장이 기축통화국 중앙은행 총재 10명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들끼리 필요할 때 서로 돕자”고 제안했다.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 계약의 시작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되자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극비리에 연준으로 달려갔다. “통화 스와프 계약은 미국이 급할 때만 쓰는 수단이 아니다”라고 설득했다. 그 말이 먹혔다. 2008년 10월 29일 한미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 계약이 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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