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새로운 전통의 기록, 진주공예비엔날레
100년 된 은행나무 길을 걸어 보았다. 지난겨울 자갈과 진흙으로 뒤엉켜 척박하고 어수선했던 같은 길을 걸을 때에는 이 은행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가을이 무르익고 황금빛의 태양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지금 경남 진주시에서 2023 진주 전통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된다. 11월 1일부터 30일까지다. 장소는 철도문화공원 내, 진주 차량정비고와 일호광장 진주역.
도시가 팽창해 KTX 진주역으로 이전하면서 옛 진주역 주변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철도문화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00년 된 은행나무 길이 있는 곳이다. 우리에게 이 10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한다.
1925년 진주역이 세워졌고 함께 차량정비고가 건립되었다. 진주는 서부 경남지역의 인적, 물적 수송의 중심지였다. 차량정비고 벽면에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선명히 남아 있다. 비행기 총탄 흔적에도 불구하고 아치형의 나무 문 두 개는 나란히 배치되어 중앙의 둥근 창과 함께 고요하며 평온하다.
이제는 그 많던 사람도, 멈추지 않고 달리던 기차도 없지만 갈대와 잔디와 계절의 꽃들이 100년 된 은행나무 길을 지나 차량정비고 앞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기억이 있고 역사가 있는 장소는 다시 새로운 기록을 통해 지속 가능하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가 된 진주 차량정비고의 새로운 기록은 2023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를 통해 새로운 전통을 기록하려 한다.
기록의 주제는 ‘오늘의 공예, 내일의 전통’이다. 진주는 전통가구인 소목의 대표적인 고장이다. 지리적 조건과 문화역사의 토대 위에 진주소목은 자연스럽게 발전해 왔고 지금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의 진주소목은 오늘의 전통을 새로 쓰고 내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겠다는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의 대표 공예 분야이다.
소목의 도시, 진주를 공예의 중심으로 두고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진주소목을 브랜드화하고 진주의 다양한 공예문화를 활성화함으로써 한국공예를 세계에 알리려는 진주 전통공예비엔날레. 도자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섬유공예 등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외 공예작가 47인의 공예 작품 또한 전통의 재료와 기술로 새로운 공예를 보여줄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전통은 전승이 아니며 답습도 아니다. 오늘의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 내일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 두려움 없는 변화와 발전으로 늘 새로워지는 것이 전통이다. 오늘의 공예는 경남 진주에서 내일의 전통을 새로이 쓰려고 한다.
사람도, 물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블랙홀처럼 서울 등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지금, 지역에서 전통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필요한 전문적인 전시 프로세스들을 서울 등 대도시에서 공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지역에만 있는 것으로. 지역 고유의 문화와 역사 예술은 블랙홀의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아니 이제는 블랙홀의 중심 위치를 변경해야 할 시기다. 지역으로, 그리고 다시 지역으로.
다시 새로운 전통을 쓰고자 재정비해 준비된 진주 차량정비고처럼 지역에만 있는 물리적 장소에 새로운 기록을 남겨야 한다. 멈추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진주는 전통공예로 진주에서만 할 수 있는 전통공예비엔날레를 전통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인구 34만여 명, 지역의 작은 도시인 진주시는 이제 블랙홀의 중심이 되려고 준비 중이다. 그 중심에는 진주성이 있고 촉석루도 있고 변함없이 흐르는 유유한 남강도 있지만 지금, 여기에 모여 2023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를 함께 즐기는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00년 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진주 차량정비고 잔디마당 위에 노란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놀고 있다. 이 가을, 진주 전통공예비엔날레는 이 아이들의 전통이 될 것이다. 키 높은 은행나무 길을 따라 걸으니 어제도 날아왔던 바람이 오늘도 날아와 구름을 보내며 내일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라고 속삭인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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