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두 거물 만날까…워싱턴 향한 ‘외교왕’이 증거라는데

왕이 26일부터 사흘간 워싱턴 방문
블링컨과 만나 정상회담 준비 작업
중동·우크라 전쟁 사태 등 논의
반도체 제재 등 경제이슈도 다뤄질듯
미중 경제 워킹그룹 첫 회의도 열려
美 국방부, 中 샹산포럼 참석 확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G20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이번 주 사흘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회담하는 방안을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는 23(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장관이 오는 26~28일 워싱턴에서 왕 부장을 맞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장관은 양국 관계를 책임있게 관리하고 열린 소통 채널을 유지하기 위해 양자 및 역내 이슈, 글로벌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국무부는 설명했다.

국무부는 미·중 정상회담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번 미·중 외교수장의 만남이 오는 11월 APEC 무대에서 마련될 미·중 정상회담 의제 조율 등 사전 준비작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왕 부장의 방미가 다음달 양국 정상 간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6일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11월 APEC 정상회의 계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시 주석과 두 번째 대면 회담이 된다.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합의물을 도출하지는 못했었다. 이에 이번 미·중 외교수장의 회동에서는 양국 정상들이 논의할 주요 의제와 관련해 심도있는 대화가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왕 부장은 앞서 지난 9월 몰타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12시간 동안 양국 관계 현안 및 글로벌 이슈 등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중요하게 다룰 의제는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중재안이다. 이스라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이른바 ‘두 국가 방안’(兩國方案)을 통한 분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왕이 부장은 지난 23일에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잇달아 전화 통화하면서 ‘두 국가 방안’을 거듭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바탕에 둔 두 국가 방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의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중국이 ‘두 국가 방안’을 앞세워 친(親) 팔레스타인 정서를 가진 아랍권 국가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11월 미·중 정상회담이 내년 1월 치러지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만큼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대화가 오갈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 강화가 가져올 국제사회 질서 변화도 주요 의제로 채택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 양국간 군사 핫라인 복원도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는 29~3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샹산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 불리는 이 포럼은 2006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 대화체로 시작됐다가 코로나19 때문에 2019년 이후 대면회의가 중단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채드 스브라지아 국방부 중국 담당 부차관보가 참석했다.

마이클 체이스 미국 국방부 중국 담당 부차관보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미·중 군 당국 간 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쳤다. 그는 “중국 군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대화를 거부해왔다. 향후 수개월 내에 양국 간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

수출 통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만큼 경제 현안들도 주요한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미국에 대중 수출통제를 철회하고 공급망 배제 움직임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중국 측에 희귀금속 수출통제, 외국기업에 대한 불공평한 조치 등에 대한 문제 제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물밑에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재정부는 24일 미중 경제 분야 워킹그룹 첫 회의가 이날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렸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미국 재무부와 중국 재정부의 차관급 인사가 참여해 양국과 글로벌 거시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 회의가 생산적이고 실질적이었다. 우려되는 점도 전달했다”고 전했다. 다만 우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국관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구체적인 결과물을 기대하기보다는 대화의 물꼬를 트고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이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어떤 합의를 할 수 있다는 징후는 거의 없다”면서도 “회의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