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생물의학 보안국가’의 탄생…‘새로운 비정상’
코로나19는 ‘나’를 가뒀다. 가족, 마을, 사회, 국가, 세계로 확장된 세계관은 다시 나로 쪼그라들었다. 기본적인 욕구인 타인과의 만남이 나와 주변을 위협하는 전염 요인으로 재정의됐다. 그 시기 공포와 걱정 속에 도입된 다양한 제도를 <새로운 비정상>(아론 케리아티 지음, 서경주 옮김, 진지 펴냄)은 ‘생물의학 보안국가의 탄생’(부제)의 전조로 걱정한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임상의학 교수를 지내며 방역 조처에 참여한 저자는 마스크 착용이 실제론 큰 효과가 없었고 보건 용어가 아닌 정치 용어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히려 병실을 찾는 장애물이 됐다고 비판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추가접종(부스터샷)까지 받은 노인이 90%에 달했지만 90%가 감염되기도 했다. 자신의 경험과 언론 보도를 종합해 폐쇄(록다운) 명령과 백신 접종 의무화, 통행증, 비상사태 선포 등 전례 없는 조처가 신중하지도, 과학적으로 타당하지도,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71개국에서 최소 120종의 위치추적 앱이 사용됐고, 22개국이 방역 수칙 위반을 적발하기 위해 감시용 드론을 띄웠다. 28개국이 인터넷을 검열했고, 13개국이 인터넷을 차단했다. 2022년 초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한 캐나다 시민들은 최루가스를 직면하는 등 32개국은 방역 관련 법을 집행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다. 영국의 국민건강보험(NHS)은 5500만 가입자의 개인 건강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민간 기업과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계획마저 세웠다. 전염병 발생으로 1) 공중보건이 위협받자 2) 감시와 통제의 디지털 기술이 속속 도입됐고, 위반하는 이를 통제하기 위한 3) 국가의 경찰권이 동원되는 위험한 삼각 동맹체제가 수립된 셈이다.
그렇다고 코로나19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봉쇄와 백신 접종 등이 낳은 더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인 세상으로 치닫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오더라도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처엔 엄격한 제한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도록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유행 당시 기한 없는 비상사태가 시행됐는데, 향후에는 기한을 두도록 하거나 의회 비준, 국민투표 등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예견한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지음, 아몬드 펴냄, 1만8천원
고통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생존기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 있던 저자는 참사와 그 이후 이어진 ‘사회적 학대’가 자신을 더 큰 고통에 빠뜨렸다고 말한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타인의 고통을 알려 하지 않는 것, 책임 회피에 급급한 사회의 모습은 그를 외롭게 했다. 고립감은 자살 생각으로까지 치달았지만, 주변과 연결됐다는 감각이 그를 살게 했다.
인셀 테러
로라 베이츠 지음, 성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2만1천원
영국 페미니스트 작가인 저자는 가상의 20대 남성이 되어 1년간 ‘연애 또는 성적 파트너를 원하지만 구할 수 없다고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들’인 인셀 커뮤니티에 잠입한다. 온라인에서 백인 남성 ‘역차별’과 신이 내린 ‘섹스권’을 주장하는 남성계 커뮤니티 ‘매노스피어’에서 활동하며 온라인 혐오가 현실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악의 꽃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난다 펴냄, 1만8천원
불문학자 황현산이 타계 직전까지 번역한 원고를 유족이 컴퓨터에서 발견해 책으로 묶었다. 이번 완역판은 정본이라 여겨지는 2판을 기준으로 삼되 1판에서 검열된 시 6편을 넣고 3판에서 가져온 12편까지 추가한 판본이다. 주석 없는 완성 원고를 두고 가족이 고민한 끝에 별도 주석 없이 출판했지만 역자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
최정은 지음, 오월의봄 펴냄, 1만6800원
소외된 여성들의 벗으로 70년간 머물러온 ‘사회복지법인 윙’의 이야기를 최정은 대표가 썼다. ‘비덕’(비빌 언덕)이라 불리는 저자는 폭력 피해 여성들이 피해자나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존엄한 주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단체를 만든 할머니와 아버지 이야기, 여성들의 도전과 창업, 함께한 지난날의 배움 이야기까지 감동적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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