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은 새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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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충남 국립부여박물관 수장고에서 유물을 살펴보던 한 학예연구사의 눈이 반짝였다.
학예연구사의 눈길이 수장고에 머물지 않았다면, 그의 손이 유물을 뒤집어보지 않았다면 금동대향로에 새 역사가 더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렇듯 새로운 유물은 땅속이나 무덤 속이 아니라 수장고에서 발굴되기도 한다.
어쩌면 새로운 유물은 지금도 어느 수장고 한편에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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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충남 국립부여박물관 수장고에서 유물을 살펴보던 한 학예연구사의 눈이 반짝였다. 2020년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1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물 측면에 거꾸로 뒤집힌 ‘U’자 흔적이 보였다. 막대 같은 손잡이가 붙어 있다 떨어져 나간 자리였다. 손잡이가 있었다면 무언가를 담기 위한 물건이었을 터. 발굴된 뒤 수장고에 보관되는 내내 엎어진 그릇처럼, 위아래가 정해져 있던 이 유물을 뒤집어본 순간 학예연구사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비록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지만, 그 생김새가 ‘손잡이 향로’와 일치했다. 그동안 토기 받침대인 줄 알았던 이 유물의 쓰임새가 새롭게 확인된 순간이었다.
별 것 아닌 듯해 보이는 이 유물의 ‘재발견’은 6세기 후반~7세기 초 백제의 향(香) 문화를 입증할 핵심 증거가 됐다. 향을 피우는 문화가 발달한 중국과 달리 백제의 기록물이나 발굴 유물 가운데엔 향 문화와 관련된 유물이 그간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로 한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금동대향로의 기원이 중국 한나라일 거란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이 유물의 쓰임새가 향로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백제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흙으로 향로를 빚어 향을 피웠을 거란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왕실이 향 문화를 받아들이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백제의 걸작이란 설명이다.
학예연구사의 눈길이 수장고에 머물지 않았다면, 그의 손이 유물을 뒤집어보지 않았다면 금동대향로에 새 역사가 더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렇듯 새로운 유물은 땅속이나 무덤 속이 아니라 수장고에서 발굴되기도 한다.
지난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금령, 어린 영혼의 길동무’의 마지막을 장식한 ‘긴 목 항아리’가 대표적이다. 6세기 초 경북 경주에 조성된 금령총에서 나온 유물 파편은 2만여 점. 지난해 7월 최지은 학예연구과 연구원이 박물관 수장고에서 무수히 많은 파편 조각의 제자리를 맞춰 보던 때였다. 아무리 찾아도 맞는 구석이 없는 조각 하나가 있었다. 2019년 9월 무덤 중앙에서 남쪽으로 약 15m 떨어진 데서 찾은 4㎝ 크기 굽다리 파편이었다.
최 연구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긴 목 항아리를 가져와 바닥의 깨진 단면과 굽다리 파편 조각을 맞춰 봤다. 그 순간 빈틈없이 유물과 파편이 딱 들어맞았다. 약 100년 가까이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긴 목 항아리와 근래 발굴된 파편이 실은 하나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발견은 금령총에 얽힌 제의(祭儀)를 이해하는 단서가 됐다. 어째서 무덤 중앙에서 출토된 ‘긴 목 항아리’의 파편 일부가 본체와 멀리 떨어진 데서 나왔을까.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훼기(제사 그릇을 의도적으로 깨뜨린 행위) 의식의 실마리가 풀렸다. 망자가 이승을 떠돌지 않도록 이승과 저승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끊는다는 뜻에서 항아리의 다리 부분을 일부러 부러뜨려 시신이 안치된 무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뿌린 것.
어쩌면 새로운 유물은 지금도 어느 수장고 한편에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발견은 다르게 보려는 자에게 보이는 법. 지난해 3월 ‘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주류성)를 출간한 최선주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 한 점의 유물이라도 다르게 보자는 거예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바닥과 모서리를 보세요. 큐레이터(학예연구사)는 유한한 직업이지만 이 발견은 유물의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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