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활동은 포기할 수 없는 기본권…전태일에 진 빚 어떻게 갚을까 고민”
“‘기레기’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 박도제씨는 1999년 한 신문사에 들어갔다. 2016년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한 뒤 기자노조 위원장, 통합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노조 설립 과정을 기록한 게 수상작 ‘애완견이 된 감시견’이다. 박씨는 “자본이 아무리 애완견의 역할을 요구해도 언론인은 기본적으로 감시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애완견이 된 감시견’은 “박 팀장, ○○기업 이번 달 광고 집행이 어렵다는군. 한번 알아 봐봐”라는 데스크 전화로 시작한다. “다 쓴 치약을 칫솔로 밀어내듯 영혼을 짜내야 한다. 기자 업무도 아닌데 몇 년째 그러고 있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자위도 더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박 팀장은 “고상한 앵벌이”인 광고 협찬 전화를 하려고 기자실 밖으로 나와 ○○기업 최 부장에게 전화를 건다.
이 르포는 “실시간 속보 경쟁에 기사가 부실해지고, 광고주 입김으로 기사가 사라지는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희망은 곧 ‘저널리즘의 실현’이다.
박씨는 수상 소감에서 “소외된 곳의 이야기를 많이 전하지 못한 부채 의식, 노동자의 아픔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부채 의식, 정론·직필에 좀 더 충실하지 못한 부채 의식…. 어느 날 뒤돌아보니 빚이 수북하게 쌓여 있더군요”라고 적었다. 저널리즘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청계천을 걸을 때면 전태일에 대한 부채 의식이 커졌다. 자녀들도 떠올랐다.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는 그때 뭐 했어?’라고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더라”라고 했다. 후배들도 생각났다. “먼 훗날 후배 기자들이 언론이 망가지는 상황에서 선배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몇 마디라도 할 말이 있어야 하잖아요.”
박씨는 노동조합 결성에 나섰다. 르포는 결성 과정에서 벌어진 사측과 데스크들의 협박과 회유도 적었다. “크든 작든 안팎으로 상처를 주거나 입는 경우가 많았다. 상처에 대해 마음은 아프지만, 많은 고민 속에 결정한 일이라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조 결성 뒤에도 회사와 편집국은 그대로였다. 노조 설립 뒤 공정보도위원회를 만들어 공보를 매달 발행했다. 편집권 침해 방지와 내부 견제를 위한, 공보위원과 편집국장 및 데스크가 참여하는 편집제작협의회도 가동했다. 박씨는 “(노조 자주성과 민주성 같은) 가치가 편집국에 자리 잡을 때 각종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자들이 편집국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지난해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 웨스턴대학 편의시설에서 학생들 주문을 받아 음식을 제공하는 ‘서버’ 일을 한다. 대학 노조 소속 노동자다. “노조 활동은 동서양을 떠나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호됩니다. 그런 기본권을 포기할 수는 없지요.”
대학 다닐 때도 LG전자 창원 공장에서 하청노동자로 1년 정도 일했다. 3교대로 TV 브라운관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어릴 적 ‘도제’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자 이름은 ‘道濟’지만 동음이의어인 ‘徒弟’가 종종 떠올랐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자가 중세 유럽에선 ‘도제’였다고 하지요. 평생 장인 밑에서 힘들게 일해야 하는 이름 아닌가 싶었거든요. 지금은 아니에요. 역사의 주인공인 노동자를 뜻한다고 생각하니 꽤 괜찮은 이름 같아요.”
박씨는 앞으로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없어야 합니다. 노조 조직률도 30%는 넘어야 자본의 욕망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전태일문학상을 통해 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이 르포를 뽑았다. “‘노조 혐오’ 정서가 팽배한 지금의 현실에서 노조의 본래 기능, 그리고 노조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표현하는 글”이라고 평했다. “기자들 중에서도 이처럼 공익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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