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쓸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면의 폭력에 맞서는 글의 힘 믿어”
조수현씨의 단편 소설 ‘개미인력 남쁘로모따’의 ‘남쁘로모따’는 이주노동자 청년이다. 한국 청년 주인공인 ‘나’는 인력사무소 ‘개미인력’에서 남쁘로모따를 만난다. 네팔에서 온 지 5개월 됐다. 월 45만원짜리 월세방 ‘투투장’에서 지낸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 5분 거리다. 65층 펜트하우스 자재 운반 등 같이 노동하면서 친해진다.
남쁘로모따가 어느 날 약속한 일에 나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수만원, 수십만원을 빌린 뒤 잠적했다. 나는 투투장 방으로 찾아갔다. 스포츠토토 종이가 어지러이 널렸다.
남쁘로모따는 첫 토토에서 25배당짜리 게임을 맞혀 25만원을 벌었다. 75만원을 따기도 한다. 토토에 심하게 빠진다. 작업 중 스포츠 중계에 열중하다 실수를 해 사람도 다친다. 남쁘로모따에게 스포츠토토를 가르쳐준 사람이 나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조씨의 단편은 이주노동자를 다룬 여느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이 기존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루는 방식과 다른 점은 그들을 타자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한 방에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서툰 한국어(“그거 뭐해요(뭐에요)”)를 통해 나에게서 남쁘로모따에게 전해지고, 그들의 날품팔이 관계처럼 남쁘로모따의 몰락 과정이 소문으로 전해지며, 이로 하여금 소설의 인물이 현실로 걸어 나오는 경험을 하게 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
조씨 개인 경험을 녹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려고 인력사무소에 처음 갔다고 한다. 조씨는 지금 한 대학원에서 공공정책 공부를 하고, 가끔 건설현장에서 생계유지 노동을 한다. “요즘에는 각종 자재를 등에 지고 나르는 ‘곰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건설현장에서 여러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편의점 밖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본국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주노동자들이 지내는 방은 어떨지, 자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할지, 돈은 본국에 얼마나 보낼지, 얼마를 벌어서 돌아가려고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주노동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조씨는 자신의 노동과 상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무거운 자재를 지고 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면 턱 끝으로 하염없이 땀이 떨어집니다. 그러고 있다 보면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어쨌거나 ‘노동하고 있다는’ 몸짓만 유독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래도 다들 말없이 짐을 나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조씨는 이주노동자들이 신중하게 스포츠 복권을 구매하는 모습을 본 게 유독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와서 돈을 불리려는 유혹에 빠져 외려 번 돈마저 잃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현세대가 겪는 욕망과 소비의 패턴도 이와 흡사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조씨는 소설 속 ‘나’가 결과적으로 남쁘로모따를 타락에 빠지게 한 인물이라고 했다. 나는 일을 잘 나가지만, 남쁘로모따는 일을 거의 나가지 못하게 된다. 조씨는 “불안하고도 잔인한, 시장과 노동의 모습을 그리고도 싶었다”고 했다. “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민보다는, ‘나 이외에 다른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인간애적) 관심과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조씨는 수상 소감에서도 “일을 하고 글을 쓰면서 더 많은 사람이 기뻐야 하고, 덜 아플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조씨는 “욕망과 실현, 수입과 지출의 불일치가 커지고 불로소득이 더 큰 가치와 부러움을 갖게 된 세상에서 노동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기쁨”이라고 했다. “비참하고 짓밟히고 소외당한 마음에 관한 글을 쓰려 한다”고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엔 거의 폭력이 숨어있습니다. 그에 맞서는 글이 주는 힘을 아직 믿습니다.”
조씨는 “몸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당분간은 육체노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조씨는 “10여년간 결식아동에게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싸서 배달했던 엄마와 아빠”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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