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당한’ 공장에서 갈망한 자유…‘나다운 시’ 찾아 사람답게 살고파”
“노동자란 말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안철수씨 말이다. 그는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35년 전 부산노동자문학회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노동자의 삶과 인권을 토론하고, 문학으로 표현·실천하며 알려 나가자고 다짐하던 때를 떠올렸다.
20대 중반 공장에서 일하던 때다. “늘 문학책을 가까이하면서 지적 배고픔”을 채우던 때다. 그때 “시를 쓴다”는 한 친구를 만나 시를 배웠다. 좋은 시어를 쓰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문학 모임 중에 “노동자 현실에 먼저 눈을 뜬 또 다른 친구”도 만났다.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안씨는 “공돌이, 공순이가 정체성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노동은 세계의 주체라는 걸 깨달으면서 자유와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주체라고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의식은 확립됐고, 다 같이 깨달을 때 비로소 세계는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씨가 친구와 함께 어떻게 노동자의 비인권적 현실을 알리고, 노동자를 일깨울까 고민하다가 만든 게 부산노동자문학회였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마치 기름에 불붙듯 한 사명감이 타올랐다”고 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접하곤, 노동시를 쓰게 됐다.
안씨는 인생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노동운동을 접고 먹고사는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시를 덮고 살았다. 항상 마음 한쪽에는 시가 있었지만 쓰지는 못하다가 한 4년 전쯤에 불현듯 시를 쓰고 싶어서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시 ‘밴드’에서 만난 이들 덕에 인생에 두 번째로 다시 시를 부여잡았다고 했다.
그렇게 쓴 시 하나가 “오후 네 시는// 손톱 밑이 까매져서 손톱이 잘 자라요/ 소음방지 귀마개에/ 종이컵 그득 물 한 잔 마시면 꽃은 피고요”로 시작하는 ‘소음 공장’이다.
안씨는 지금 작은 섬유제조 공장을 운영한다. ‘소음 공장’ 배경은 이 공장이다. “말이 운영자지 저는 남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고 밤 12시나 되어야 일을 마칩니다. 거의 회사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죠. 소음을 종일 껴안고 사니 나에겐 친구와 같겠죠.”
심사위원단은 “몸과 통증을 기계와 소음으로 발화하는 그만의 언어가 듬직했다”고 평했다. “고장 난 나무에서/ 풀린 볼트가 낙과처럼 굴러다녀요” 같은 시어로 표현했다.
안씨는 “오랫동안 공장노동이란 박스 속에 갇혀 살았다”고 말한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온통 기계뿐이고 어쩌면 수십 년간 같이했으니 분신과 같을 수도 있겠고요. 그러니 작은 부품 하나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는 이 작은 부품에다 “약자로서 겪은, 옹이처럼 박힌 온갖 아픔과 인간적 모멸감”을 이입하는 듯했다.
안씨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공간인 공장”이라는 “갇힌 박스”에서 자유를 갈망했다고 한다. 그 자유는 “외부 세계, 즉 기계 숲이 아니라 상반된 자연이 만든 숲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했다. 안씨는 노동과 산업화 문제가 소득 재분배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이 공장은 안씨에게 “주어진 세계”다. “그러니 세계와 소통할 수밖에 없는 강제된 유일무이한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죠. 저는 피와 땀이 있는 나름 이 소중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법을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아이를 홀로 돌보는 여성 노동자의 고된 노동을 다룬 ‘엔리씨의 작업 일지’도 수상작이다. 심사위원단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표현도 참신했다”고 평했다.
안씨는 “지금은 시가 가까이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 “가끔은 아득해질 때도 있지만 어쨌든 시는 나에게서 더 떠나지 않아서 좋습니다. 이젠 더 가까워져야겠습니다.”
“나다운 시”를 찾는 게 목표다. “스스로 소통 가능하고 납득하는 시”다. 안씨는 여전히 시가 “실체가 되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유효하다”고 했다. 전태일상을 “사람다운 삶을 살고 사람다운 시를 쓰라는 뜻으로 받는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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