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찔끔 인질 석방에…지상전 발걸음 무거워진 이스라엘
휴전 협상 여론 압박…미·이스라엘선 “인질 풀려나야” 일축
인질 구출·하마스 소탕 목표 상충…가자 진입 딜레마 더 커져
하마스가 납치해간 인질을 조금씩 돌려보내면서, 가자지구 지상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딜레마에 빠졌다. 가자지구에서 인질을 전원 무사히 구출한다는 목표와 하마스 소탕전을 벌이겠다는 목표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인질 구출을 최우선으로 해달라는 가족들의 호소도 이스라엘의 고민을 키운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날 이집트와 카타르의 중재로 이스라엘인 인질 2명을 추가로 석방했다. 이번에 풀려난 이들은 가자지구 인근 니르 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된 누릿 쿠퍼(79)와 요체베드 리프시츠(85)다. 리프시츠의 가족은 그가 “10년 넘게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환자를 이스라엘의 병원으로 데려가 돌봤던 평화운동가”라며 “아버지와 다른 무고한 이들의 석방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인질 석방은 이번이 두 번째다. 사흘 전에도 하마스는 미국인 인질 2명을 돌려보냈다. 인질 약 50명의 추가 석방이 임박했다는 이스라엘 측 전언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인질을 연료와 방어 준비 시간 등을 얻어낼 협상 카드로 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인질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하마스가 연료를 대가로 민간인 인질 석방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에 하나뿐인 발전소가 연료 소진으로 가동을 멈춘 지 2주가 지나면서 현재 가자지구에서는 식수가 공급되지 않고 병원 운영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인질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일단 휴전을 하고 하마스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안팎에서 커지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했다. 휴전하고 인질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인질이 모두 석방된 후에만 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인 인질 석방 이후 임시휴전 가능성에 대해 “인질들이 풀려나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지금은 휴전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은 이날 가자지구 지상 작전에 관해 조언할 군 장교를 이스라엘에 파견했다.
문제는 진입을 강행할 경우 인질의 무사 귀환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가자지구의 밀집된 도시 구조, 정보 부족, 산발적으로 퍼진 인질 위치 등을 고려하면 구출이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스라엘이 파악한 인질 약 220명이 전부 하마스 손에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일부가 다른 소규모 무장세력이나 범죄조직으로 넘어갔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출신으로 인질 구조 전략을 가르치고 있는 티모르 이스라엘리는 “가자지구에서 인질을 구해낸 전례가 없다. 인질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최대로 높이려면 직접적인 움직임은 가장 마지막 선택지”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2006년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릿이 가자지구로 납치됐을 때도 이스라엘은 구출 작전이 너무 위험해 보류했으며, 2011년에서야 자국 내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027명과 교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민의 무사 귀환과 하마스 진압이라는 상충하는 목표 사이 딜레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상 작전의 ‘적정 수준’을 가늠하고 있다. 척 프레일리히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내각에서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도 부담이다. WSJ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내에선 인질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기회에 하마스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하마스가 잡아간 인질은 이스라엘 국민에 그치지 않는다. 태국인, 독일인, 영국인, 프랑스인 등도 포함돼 있다. 자국민이 인질로 잡힌 다른 국가로선 인질 구출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실제 인질 협상에는 이집트와 카타르 외에도 여러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이 막후에서 이스라엘에 협상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달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질의 가족들도 공과 사 중 무엇을 우선시할 것이냐라는 딜레마 앞에서 쪼개졌다. 일부 인질의 가족들은 협상에 적극 나서달라고 간청했다. 여자친구가 납치된 한 남성은 “하마스 타도나 가자지구 장악이 아닌 인질 협상이 첫 번째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촌을 잃은 한 활동가는 “우리 국민과 교환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인 포로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반면 여동생과 처남이 납치된 한 가족은 “그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리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싸움”이라고 밝혔다. 아들이 끌려간 한 아버지는 “우리 정부는 하마스 소탕과 인질 생명 보호를 동시에 할 수 있다”며 지상 작전을 옹호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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