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수업, 존엄한 죽음 배웁니다”
연명치료·임종 과정 고통 외
장례 관련 자기결정권 교육
사전장례주관 의향서도 받아
“잘 살고, 잘 죽을 준비 할 것”
화면에 ‘9988234’라는 숫자가 뜨자 강의실에 있던 수강생들이 웅성대며 웃기 시작했다. 의미를 묻자 여기저기 대답이 나온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고 죽자.’ 최근 고령층에서 유행하는 인사라고 했다. 강사인 강원남 행복한죽음웰다잉연구소 대표는 “최근에 뒷부분 해석이 ‘2~3일만 아프다가 살아나자’라고 바뀌었다”며 “사는 데까지는 살다가 잘 죽는 게 복이라는 염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강동구 천호2동주민센터에서 열린 ‘웰다잉 교육’에는 수강생 20명이 자리를 채웠다.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안내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시작 시간이 꽤 지나 강의실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청자 가운데 빠진 사람은 없었다. 수강생들은 동네에 혼자 사는 60세 이상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주민들이다.
가족관계 해체와 1인 가구 증가로 고독사는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 2656명에서 2022년 4842명, 올해 상반기에만 2658명으로 급증했다.
지자체별로 2010년 전후 무연고 주민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조례를 만들기 시작했고, 올해 장사법이 개정돼 가족 외 이웃·지인·종교단체 등도 장례를 주관할 수 있게 됐지만 존엄한 죽음은 스스로 미리 준비할 때 지켜진다.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꺼리면 장례가 지연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천호동 한 주택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된 기초생활수급자 김모씨(58)는 어머니와 형제, 조카가 시신 인수를 거부해 사망 33일 만에야 공영장례를 치렀다.
강동구 관계자는 “관계가 소원했어도 ‘가족이니까 장례를 치러준다’는 인식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며 “어렵게 사는 분이 많은 수급자 주민들이 죽음은 힘들지 않게, 존엄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시작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수급자 1인 가구는 취미나 교육의 경험이 적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확률이 높다.
이에 강동구는 지난 5월부터 천호2동에서 시범적으로 60세 이상 수급자 주민을 대상으로 사전장례주관 의향서를 받고 있다. 위급 상황 시 연락할 가족·지인을 파악하는 한편 대상이 없으면 공영장례를 치른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원하는 방식대로 사후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이기도 하다.
강동구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1만8117명 가운데 40.5%(5520명)가 만 65세 이상 1인 가구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74건) 가운데 수급자 비중도 40% 정도였다.
이날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어떻게 죽으면 잘 죽는 것일까’를 물었다. “잠자는 듯이 가고 싶어요” “길게 아프지 말아야 해” “감사 기도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대답을 요약하면 ‘자다가 아프지 않고, 남은 가족이나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돈 많이 안 쓰고 깨끗하게 가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강 대표는 “많은 죽음을 접해보니 사람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더라. 잘 죽으려면 잘 살아가야 한다”며 잘 죽을 준비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화면에 띄웠다.
‘죽음을 공부했다, 평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용서와 화해를 했다, 연명치료·장례방식의 자기결정을 했다, 유언장을 썼다, 임종 과정의 육체적 고통에 대비했다….’
목록을 보던 강민식씨(81·가명)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나 해당하는지 묻자 “전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집에 가서 천천히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틀에 한번 통화하며 안부를 묻는 사회복지사의 제안에 수업을 들으러 왔다고 했다.
“괴로울 때 흔히 ‘죽어야지’라고 하지만 죽음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오기 전에는 주제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는데 몰랐던 일을 들으니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잘 살고, 또 잘 죽을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네요.”
글·사진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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