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푸른 눈의 한국 정치인

이용수 논설위원 2023. 10. 2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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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1882년 조선에 왔다. 조선은 강화도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했지만 조약문을 쓸 줄 아는 사람도, 외무부도, 세관도 없던 시절이다. 이런 일을 맡기려고 조선이 청나라 이홍장의 추천을 받아 고용한 사람이 묄렌도르프였다. 고종은 그를 통리아문(외무부) 참의(정3품)로 초빙한 지 한 달 만에 협판(차관)으로 승진시키고 목인덕(穆麟德)이란 이름을 내렸다. 외국어학교, 조폐공사 등을 세운 목인덕은 1885년 3월 1일 영국 군함이 점령한 거문도로 달려가 영국 측에 항의하기도 했다.

▶1905년 고종 특사로 미국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연 사람은 미국인 헐버트였다. 1886년 조선에 선교사로 와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는 한글을 익히고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된 이준·이상설·이위종의 활동도 도왔다. 일제는 이를 트집 잡아 고종을 퇴위시켰다. 이때 미국으로 쫓겨 간 헐버트는 42년 뒤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가 잠든 양화진 외국인 묘지의 비석 글귀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다.

▶명왕성을 최초로 발견한 미국 로웰 천문대 설립자 퍼시벌 로웰도 한때 조선 정부를 위해 일했다. 하버드대 졸업 후 일본 주재 외교관으로 있다가 1883년 한국 최초의 대미 외교 사절인 민영익의 미국행에 통역관으로 고용됐다. 유길준이 미국에서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 되도록 주선한 사람도 로웰이었다. 근대화의 폭풍이 몰아치던 구한말 선교·의료·교육을 넘어 정·관계까지 진출한 서양인이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당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인 교수는 4대째 한국에서 선교·의료 봉사를 해온 미국 린턴가 자손이다. ‘호남 기독교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교사 유진 벨의 사위가 인 위원장의 조부 윌리엄 린턴이다. 48년간 의료·교육·선교 활동을 한 그는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해 강제 출국당했지만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왔다. 군산에서 태어난 부친 휴 린턴은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인 위원장은 영어보다 호남 사투리를 먼저 배운 자칭 ‘순천 촌놈’이다. 저서 제목도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다. 1987년 외국인 최초로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2012년 특별귀화자로 선정됐지만 미국 국적을 버리진 않았다. 미국 선교사 집안의 의사가 한국 집권 여당의 쇄신 작업에 메스를 댄다. 의원 출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푸른 눈의 한국 정치인’ 역사를 써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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